프롤로그 ? 옹기 속에서 피어난 기억
새벽녘, 집 안이 고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종종 낯선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마치 빗방울이 처마를 타고 떨어지는 듯한 소리, 그러나 창밖을 내다보면 비는 오지 않았다.
그 소리는 웃묵 한쪽에 놓인 옹기에서 들려오던 **막걸리의 발효 소리**였다.
보글보글, 툭툭, 작은 거품이 터지며 내는 그 소리는 내 유년의 자장가였다.
옹기 주변에는 늘 익숙한 향이 가득했다.
찐 고두밥의 고소함, 누룩에서 번져 나오던 묵직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발효가 만들어내는 알싸한 향이 뒤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할머니는 그 냄새를 맡으며 술이 잘 익는지 가늠하셨고,
나는 그 곁에서 세상 가장 신기한 마술을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술을 담그기 위해 쪄낸 고두밥을 한 줌 쥐어 주셨다.
그 시절, 쌀밥은 아이들에게 귀한 간식이었다.
손에 꽉 찬 꼬두밥은 입안에서 달고 고소하게 풀려나며,
잠시 후 술독으로 들어가 또 다른 맛과 향으로 태어나곤 했다.
그 순간, 나는 알지 못했다.
그 기억이 수십 년 뒤,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다시 빚어질 줄은.
『막걸리, 기억을 담그다』는 할머니가 물려주신 작은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술을 빚는 법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한 가족의 역사**, **한국인의 전통**, **삶의 지혜**가 함께 담겨 있다.
막걸리 한 사발 속에는 지난 세대의 땀방울과 웃음, 그리고 그리움이 함께 녹아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단순히 막걸리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깃든 기억과 이야기를 함께 느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이 책을 덮은 후 직접 막걸리를 빚어보고,
그 순간 할머니의 미소와 발효의 보글보글 소리를 떠올리기를 바란다.
이 책은 결국, **추억을 다시 빚는 과정**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