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을 꿈꾸는 한 소녀의 이야기
조선 태종 대에 상인들이 본격적으로 종로 거리에 모여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양이 조선의 수도여서 많은 인구가 몰려 살았기 때문에 식량이며 땔감, 옷감 등을 성 안에서 다 만들어 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각 지방에서 올라온 물건들이 사고 팔린 곳이 시전이다.
조선 시대에는 엄격한 신분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네 계층으로 구분되었으며 신분에 따라 생활 모습이 달랐다. 게다가 남녀의 차별이 심해 남자아이들이 책을 읽고 글을 배울 때 여자아이들은 수를 놓고 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시전의 상인들은 중인 계급에 속했다. 비록 양반보다는 신분이 낮았지만 상업이 발달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경우도 많았다. 조선 후기에는 상업이 더욱 발달하면서 큰돈을 벌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거상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 지점을 설치하여 판매를 확장하기도 하였고, 또 대외 무역에 참여했다. 한 가지 물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상품을 거래했기 때문에 이득도 매우 컸다. 한양의 경강상인, 개성의 송상(松商), 동래의 내상(萊商), 의주의 만상(灣商), 평양의 유상(柳商) 등이 그 대표적인 거상들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령이라는 필방아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시전에서 필방을 운영하는 강필묵의 딸 해령은 바느질을 배워 조선의 여자로 살기보다는 장사를 해서 거상이 되려는 꿈을 꾼다. 해령을 좋아하는 백정의 아들 지상 역시 어찌하든 무사가 되어 성공하려는 소망을 품고 있다. 조선에서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상은 작은아씨 동생인 도련님을 모시고 명나라로 떠난다.
강필묵은 새 필방을 내면서 예전 필방을 아들인 목진에게 넘긴다.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해령은 ‘땅그네 종 치기 대회’에서 장원하여 받은 무명베와 모아놓은 물건들로 좌판을 편다. 어찌하든지 상인으로 성공하고 싶은 것이다. 꿈을 꾸는 자에게는 기회가 오는 법이다. 이러한 노력이 거상인 이 소사의 눈에 들고 마침내 청포전에서 일을 배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사가 해령에게 처음 가르친 것은 장사 수완이 아니라 상도였다. 마포나루에서 그럴듯한 말로 속여 몇 배의 이윤을 남기는 해령에게 장사에도 나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을 따끔하게 질책했다. 장사란 이문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함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신용을 지키지 않는 상인에게 물건을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신분제의 굴레에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도전하는 해령과 지상. 이 책에서는 두 아이가 거상이 된 것도 무사가 된 것도 물론 아니다. 단지 꿈을 이루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이제 그들은 더욱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인내해야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을 행복으로 여겨야 한다.
어린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해령과 지상이 꼭 꿈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 그럴까? 해령과 지상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특별한 존재들이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그것을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