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나 버넷은 생소한 작가지만, 두 편의 단편은 주목할 만하다. 먼저 소개했던 「안개」처럼 「비」 또한 날씨와 심리가 효과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의 무력감 속에서 일주일째 내리 쏟아지는 폭우로 집안에 갇힌 부부. 무감각과 예민함이 충돌하면서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보여주는 간결하지만 서늘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안개」가 몽환적인 환상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비」는 심리적 균열과 공포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린다.
〈책 속에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그녀는 그 앞에 버티고 섰다. 그녀의 가슴이 들썩거렸고 눈에는 가련히도 겁에 질린 무력감이 있었다. 마치 운명에 맞서 싸우기에는 자신이 점점 무력해지는 것을 알고 있듯이.
짐 베어드는 약간 허세를 부리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비겁함을 가리는 불변의 망토, 그것이 허세다. 그러고는 식탁 앞에 앉더니 평소처럼 먹기 시작했다.
앨리는 묘한 공포심을 가지고 그를 지켜보았다. 켜켜이 쌓인 혐오감이 원래의 익숙함만큼이나 새로운 표현을 찾았다. 그는 짐승처럼 먹었다.
이번 주의 악천후가 그녀의 숨은 감정, 은밀한 의견, 오랫동안 은폐해온 증오심의 상당부분을 표면화한 것 같았다. 끝없이 내리는 비가 그녀의 무감각한 영혼을 서서히 지치게 하고, 신경을 갉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와 한 지붕 아래 그토록 오랫동안 갇혀지낸 적이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가 살인적인 날씨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녀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