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강명한 군주,
태종 이방원의 진면목을 담은 단 한 권의 책!
〈용의 눈물〉,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 〈나의 나라〉…,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조선 제3대 국왕인 태종이 주인공 혹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사극들이다. 태종 이방원만큼 드라마나 소설 등에 자주 소환되는 왕도 드물다. 이들 매체에서 태종 이방원은 위화도회군, 최영·정몽주 같은 고려 충신들의 죽음에서부터 조선 개국, 정도전 숙청, 제1·2차 왕자의 난에 이르기까지 여말선초 격동하는 역성혁명의 한복판에서 그 누구보다 비정하고 차가운 칼날을 휘둘렀던 인물로 그려진다. 잔인무도한 권력의 화신으로 묘사되는 가운데, 정작 정치가로서 그가 추구했던 가치와 ‘피의 숙청’을 통해서라도 왕권 강화를 이루고자 했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온전히 알려지지 못했다.
이 책 《태종 평전》은 정조와 세종 등 조선의 부흥을 이끈 국왕들의 리더십을 비롯해 정도전과 최명길 등명재상들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이 2010년부터 최근까지 약 10여 년 이상 《태종실록》을 연구하며 태종의 국가 경영 리더십을 면밀하고 입체적으로 조망한 책이다. 이 책은 조선 건국 후 창업기를 거쳐 수성기로 진입하는 역사의 전환기에 그 중심에 있었던 태종의 언행들을 실록을 비롯해 다양한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되살려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태종은 여러 지점에서 탁월성을 보인 인물이었지만, 무엇보다 ‘위기 경영’에 매우 능했다. 특히 왕위에 오르기 전, 1388년 5월 위화도회군 때부터 1400년 1월 ‘제2차 왕자의 난’까지의 12년간은 그의 정치적 생명이 백척간두에 매달린 듯 위태로운 시기였는데, 그때마다 태종은 늘 ‘선발제지(先發制之, 먼저 나서 사태를 진압한다)’의 방식으로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한 문제의 싹을 제거해버리며 사태를 유리한 방향으로 반전시켰다.
“이상적인 군주란 온갖 도전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굳센 의지와 함께 일의 이치를 꿰뚫는 눈을 가진 존재다. 이 군주상에 걸맞은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사람을 말할 수 있겠다. 바로 조선의 제3대 국왕인 태종 이방원이다. 500년 조선왕조의 기틀을 닦아낸 정치 비전과 국가 기강 정립, 그리고 무엇보다 인재 경영 측면에서 태종을 따라갈 지도자가 없다.”
_ 〈여는 글〉 중에서
창업과 수성을 두루 이룬 위대한 군주, 태종
그가 추구했던 위대한 국가를 만드는 길!
《태종 평전》은 총 7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정치가 태종’)에서는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의 역사를 조명한다. 위화도회군으로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부터 1400년 즉위하기까지 태종은 총 다섯 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회군(回軍)과 건국(建國)과 즉위(卽位)라는 엄청난 정치적 소용돌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동안 그가 보여줬던 도전과 응전의 장면들은 이후 태종이 왕좌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서막이다.
제2장(‘왕의 여자들과 인간 이방원’)과 제3장(‘태종 재상 3인방’ 이야기)에서는 그가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한 명인 부인 원경왕후 민씨를 비롯해 태종 재위 시절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신생 국가 조선의 기틀을 만들어나간 명재상 조준, 하륜, 권근 등 ‘태종의 사람들’을 다룬다. 왕권과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외척과 공신은 과감히 숙청하되, 정치적 비전이 일치하고 능력이 출중했던 이들은 품 안으로 거둬들여 끝까지 책임졌던 모습에서 ‘가(家)’보다 ‘국가(國家)’를 우선시했던 태종의 절대적 국가관과 인재 등용의 원칙을 이해할 수 있다.
제4장(‘태종의 나라, 조선’)과 제5장(‘실용 외교와 국방’)에서는 권력 쟁탈이라는 정치사 위주의 서술 속에 가려졌던 태종식 국가 경영의 실제를 국내외로 나눠 묘파한다. 태종은 온 백성이 ‘가족같이 화합하고 잘 사는 나라’, 즉 ‘소강(小康)의 나라’를 정치 비전으로 제시하고, 국가 통속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개혁 입법을 추진했다. 신문고 운영, 전국의 토지 전수 조사, 오늘날의 주민등록증제에 해당하는 호패법 도입과 실행, 불교 개혁, 노비종부법 시행 등 태종 재위 시절에는 민생 안정과 국가 기강 정립을 목표로 각 분야에서 다양한 입법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또한 사대교린의 원칙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실용 외교로 혼란한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에서 국경에서의 소요를 진압하고 국익을 지켜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도발이 계속되는 요즘, 우리나라 영토 이슈와 관련해 《태종실록》에 담긴 기록들은 이들 지역을 우리 영토로 지켜내게 하는 중요한 역사적 근거로 작용한다(《태종실록》은 ‘백두산’과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이다). 태종 재위 시절 조선왕조는 경상도와 전라도에 창고를 증설해야 할 정도로 국가 재정이 튼튼해졌고, 외척 세력 제거로 왕실이 안정되었으며, 명나라와 단단한 신뢰를 구축한 상황이었다. 태종의 이런 치적들은 국내외적 정치 안정이 성공적 개혁 달성의 조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태종이 일군 일련의 성과들 중 그의 일생 최대의 업적을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성공적인 왕위 승계 작업이다. 만일 태종이 충녕대군을 포함해 왕자들을 보호하지 않았거나, 마지막에 과감히 세자 교체를 단행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세종 치세’는 불가능했으리라. 제6장(‘성공적인 전위, 리더십의 대단원)에서는 태종이 왕위를 승계하는 과정을 면밀히 살피면서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의 화신이라는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킨다. 그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취했던 일련의 조치들, 예컨대 정적의 척살, 내외척 제거와 같은 행동들은 많은 오해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이미 충분하다[已?·이족]’라면서 권좌에서 스스럼없이 물러남으로써 태종은 자신이 권력 중독자가 아님을 증명한다.
“뛰어난 지도자가 나오면 온 나라가 복 받는다.”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강명한 지도자에 대한 염원
우리가 지금 태종 리더십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
나라를 부강하게 이끌 큰 틀의 아젠다를 제시했던 정치 거목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정치에 대한 경멸과 조롱이 채우고 있는 듯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한 정치적 비전과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리더의 존재가 절실하다. 태종이 서거한 지 600년이 되는 해이자 국가의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선거를 목전에 앞둔 지금, 우리가 태종 리더십을 다시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물론 창업과 수성을 두루 이룬 위대한 군주였던 태종에게도 한계는 존재한다(제7장 ‘태종 정치의 빛과 그늘’).
왕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시켰던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추진력은 있었으나(‘강거목장’의 리더십), 국왕의 생각을 뛰어넘는 창의력 있는 인재의 출현은 일정 부분 가로막았다. 세종의 위대함은 부왕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부왕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이다. 무엇보다 세종 재위 기간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척살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는 정치에 대한 당대 대소신료와 신민들의 신뢰를 회복시켰다.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종시대 인재들은 저마다의 능력을 자유로이 꽃피웠고 이는 태종에서 시작해 세종으로 이어지는 50여 년(1400~1450년)이 ‘한국 문명의 위대한 축(pivot)’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다.
《태종 평전》은 부록들의 구성도 알차고 옹골지다. 책의 말미에는 《태종실록》에 기록된 태종의 언행 중 그의 정치적 비전과 삶의 지향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구절 7개를 추려내어 담았다(‘태종 어록 7선’). 말은 사람의 성품과 기질을 담아내는 투명한 그릇이다. ‘태종의 말’ 속에서 백성의 삶을 위해 그가 걸머졌던 책임감과 신중함, 인사(人事)를 만사로 보았던 인재 중시의 철학, 비합리적 관행을 타파하고자 했던 유연한 사고, 적절한 시점에 과감히 권좌에서 물러날 줄 알았던 자기 절제력 등을 두루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태종 관련 학술 논문 현황을 한데 모은 부록도 눈여겨봄직하다. 대중매체에서는 굉장히 자주 다루어지는 역사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1962년)부터 지금까지 약 60년간 태종을 주제로 삼은 학술 논문은 채 100편이 되지 않는다(2021년 기준, 총 83편). 또한 기왕의 연구들도 특정 분야에 치우쳐져 있어 태종시대에 이룩한 경제·국방·국가 기간(基幹) 정립에 대한 조명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저자에 따르면 《태종실록》에 실린 풍부하고 다양한 국가 경영 사례는 앞으로 더 다각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보기 좋게 갈무리해둔 ‘태종 연구 논저’ 리스트는 후속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태종을 더 깊이 독해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기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