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일어서다

붓다, 일어서다

  • 자 :손석춘
  • 출판사 :들녘
  • 출판년 :2014-05-13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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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들이 무사무탈을 비는 종교, 수능 날 <9시 뉴스> 첫 화면에 나오는 종교, 이따금 “00사 분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종교……변색된 불교의 몇 가지 이름 가운데 하나다. 오랜 세월 불교와 함께 호흡해온 이 땅이지만 정작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교와 그리 친하지 못하다. 소통하려는 노력도 보기 드물다. 어쩌면 오늘날의 불교는 21세기 한국 사회 곳곳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과 젊은 세대에게 그저 고색창연한 유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나게 될 한국 최고의 선승들이 던지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불교는 본래 산중의 화두로 머무는 종교가 아니었다. 기복 신앙의 모체도 아니다. 불교를 “산중수행”에 “기복 신앙의 특성”을 가진 종교쯤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절대적인 오해이다. 붓다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탓이다. 이 책은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은 무엇인가?”, “불교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획득하는가?” 하는 물음을 안고 저자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생각의 결과물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개인과 사회, 정치와 경제, 과거와 미래 등 목전의 고민거리들을 불교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용히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이 책은 개인의 성찰을 자극하고 독려하는 것 외에 진정한 “소통”의 열망을 노래한다. 불교를 오해하고 있는 불자들, 그리고 불교를 전혀 몰라서 생각의 물꼬를 트지 못하는 사람들과! 이 책의 울림이 오묘하며 깊고, 때로 서늘하다고 느끼는 근거이다. 저자는 또 대한민국의 불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무런 불교적 시각을 갖추지 못하면서 당신은 과연 자신을 불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그러면서 이제는 불교가 ‘산중의 금불상’ 앞에 절하며 기복을 갈망하는 데서 벗어나 십우도의 마지막처럼 “시장”으로 내려갈 것을 강조한다. 부처 본연의 가르침을 따라서. 이 책은 세상을 초연하게 보는 데 익숙한 불교인들에게는 급속도로 변화해가는 세상을 불교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주고, 또 불교를 낯설게 여기거나 고루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겐 붓다의 가르침이 “지금 여기서” 생생한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경험하게 해준다. 종교인은 물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21세기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불교



아놀드 토인비는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으로 새로운 문명이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너무 많이 회자된 명제라 식상한 말이 되었지만, 그 의미를 온전히 성찰한 사람도 드물다. 세계 문명의 흥망성쇠를 평생 연구한 토인비는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까? 사실 2012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다수는 서양 문명의 세례를 받으면서 자랐다. 그 터전을 ‘근대 사회’라고 부르든 ‘자본주의 체제’라고 말하든 서양 중심의 문명이 지난 300여 년에 걸쳐 지구촌을 지배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문명의 배경에는 기독교가 있다. 토인비조차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이렇듯 지구촌의 문명의 기저가 된 기독교와 오랜 세월 동양의 정신 ? 문화를 일궈온 불교가 소통해야만 새로운 역사의 지평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탓이다. 그만큼 지구촌에는 동서양의 만남이 중요하고, 그것을 상징하는 기독교와 불교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양 문화의 중심축이던 기독교는 종래의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교리 중심주의에서 깨달음 중심주의로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 나라에서만 편협한 기독교 근본주의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 불교도 낡은 종교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이 땅의 전통문화를 살리는 일은 물론, 세계적 흐름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불교의 세계관을 하루 빨리 정립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21세기와 불교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착상은 별로 새롭지 않다. 불교는 이미 서구에서도 명상과 심리치료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불교의 본령은 과연 “심리치료”나 “수행” 혹은 “개인의 각성”에 있는 것일까?





붓다에게 “당신의 역할”을 묻다



불교는 이제까지 지구촌 사람들의 정서적 불안과 정신 장애를 해결하는 심리치료제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심신이 지친 사람들은 곧잘 산 중 사찰을 찾아가거나 미리 예약을 한 뒤 템플스테이를 떠난다. 사람들의 어지러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붓다의 가르침 역시 고통을 넘어서는 데 있으므로 심리치료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면 그 또한 불교의 적절한 역할이라 하겠다. 하지만 불교가 21세기에 할 수 있는 일은 심리치료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 되어서도 안 된다. 불교는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물음을 던지고 구체적인 답을 주어야 한다. 새로운 각도에서 또 전혀 고답적이지 않은 발상 아래서 정치와 경제, 사회, 인권 문제를 바라보아야 하고, 그것들을 조망하고 비판할 수 있는 건강하고 공정한 시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의 불교는 여전히 대다수 국민에게 “산중 종교” 또는 “기복 종교”로 각인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에 견주어볼 때 훨씬 더 치열하고 야만적인 경쟁 체제에 놓인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어쩌면 계층 간의 위화감, 서로에게 묻어나는 적대감이 너무 큰 탓에 종교(종교인)가 일찌감치 겁을 집어먹고 산사山寺로 혹은 대리석 성전으로 도망을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이 책에서 살펴보겠지만-불교의 고갱이인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사실 현대인의 정신적 장애는 물론 사회적인 위기를 넘어서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불교는 원래 “산중 종교”가 아니라 “시장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불교



이 책의 1부는 산중문답으로 구성되었다. ‘깊은 산 50년 선승은 뭘 권할까?’는 제목 그대로 저자가 한국의 깊은 산에서 50년 안팎 참선에 전념해온 일곱 명의 고승들을 찾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은 뒤 정리한 글들이다. 살불살조(殺佛殺祖)는 <임제록>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의 대표적 선승 임제는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은 바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어떤 물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꿰뚫어 해탈하여 자유자재하게 된다”고 선언했다. 매우 통렬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2부는 ‘심리치료를 넘어 불교의 뜻’을 묻는 글들을 모은 것이다. 회두토면(灰頭土面)은 머리에 재를, 얼굴에 흙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을 이른다. 바로 누구든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혼자 수행할 게 아니라 세속의 중생과 더불어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라는 뜻이다. 2부는 그런 가르침을 담았다. 따라서 1부의 산중문답에서 세속으로 내려와 흙먼지와 재를 덮어쓰며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일상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찾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쟁점이 되었던 일들, 앞으로도 우리 삶의 질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사 문제들을 불교적 시각에서 조명한 글들이다. 3부는 ‘해탈 다음에 왜 시장이라 했을까?’는 물음에 그 뜻을 성찰하고 답한 글들이다. 기실 그 물음은 십우도의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廛垂手)를 이른다. 십우도(十牛圖)는 선의 입문부터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한 선종화(禪宗畵)다.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에 이어 마지막이 입전수수다. 해탈에 이른 뒤 시장으로 들어가 손을 내밀라는 가르침은 21세기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현대인이 살아가는 구체적 생활의 시대적 과제와 정면으로 마주치라는 가르침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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