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이고, 자만하고, 편애했던 한국 역사상의 폭군
그들의 궤적을 통해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본다
역사 속의 몰락 군주들
한국 역사에는 어떤 왕이 있었을까? 조선 세종대왕과 정조 같은 성군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라를 나락으로 빠뜨린 폭군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편견과 아집, 이기심에 가득 차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거듭했다. 무능했으나 자의식은 하늘과 같았으며,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고, 쓸데없는 겉치레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자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희생시키고, 다른 자의 재능을 질투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들의 자만은 백성들을 더욱 곤궁에 몰아넣었다. 그래서 나라는 도탄에 빠졌고, 백성들은 울부짖었다.
폭군들의 결말은 어땠을까? 그들은 침략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거나 반정으로 끌어내려졌다. 그렇게 바닥으로 떨어진 폭군에게는 신하도, 백성도 등을 돌렸다. 최후는 비참했으니, 그것이야말로 폭군이었던 그들에게 하늘이 응징을 내린 것이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한 채 남 탓을 하며 멸망의 길을 걸었다.
폭군의 역사는 반복되는가?
흔히 독재자의 성경이라는 오명을 듣곤 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군주에게 가장 튼튼한 요새는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이라고. 그래서 사랑받는 지도자는 비록 외적의 침입으로 패배할지언정, 민중의 지지를 받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와 똑같이 무자비한 통치론을 주장했다는 편견을 받고 있는 한비자조차 못난 왕은 자신의 힘만 쓰지만, 뛰어난 왕은 백성들의 지혜를 쓰고 만약 백성들의 신망을 잃으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도자에 대한 충고는 계속 있었다. 문제는 당사자들에게 그 충고를 새길 눈과 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폭군은 거듭하여 태어났고, 그들의 역사는 반복되었다.
21세기를 사는 지금까지도 폭군은 계속된다. 그들은 더는 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진 않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 대통령의 명패를 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래서 국민이 등을 돌렸고, 처참하게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폭군들, 그들은 왜 폭군이 되었는가? 폭군이 되어 어떻게 백성을 고생시켰는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문제가 된 것인지, 그것이 왜 나쁜 것인지, 역사의 빛이 아닌 그림자를 살펴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감춰져 있다.
우리나라의 6대 폭군들
이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실패한 왕들〉에서는 우리나라와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폭군이라 일컬어질 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구성했다. 폭군이 갖는 공통점과 특징 등을 살펴본다. 〈2장 역사 속의 멸망한 왕들〉에서는 한국사에서 대표적인 폭군 6명을 담았다. 고구려 모본왕, 백제 개로왕, 고려 의종과 공민왕, 조선 연산군과 광해군 등이 그들이다. 한국사에서 그들이 펼친 어이없는 폭정을 살펴보고, 폭군의 치세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마지막 〈3장 희생당한 왕을 위한 조곡〉에서는 왕의 희생과 국민의 기대에 대해 정리한다. 비록 역사 속의 그들이 실정을 했을지라도 현대의 우리에게는 그로써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 고구려 모본왕 - 무모한 정복욕, 잔혹한 학살
위대한 아버지 대무신왕과 뛰어난 형 호동 왕자의 그늘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고구려의 다섯 번째 왕. 아버지와 형을 능가하기 위해 무모한 중국 정벌 전쟁을 벌였으며, 그것이 좌절되자 사람들을 베개와 의자로 삼아 마구 죽였다. 백성을 학대하는 왕은 더 이상 누구의 왕도 아니게 되었고, 마침내 하잘것없는 겁쟁이가 자객이 되어 폭정을 끝냈다.
* 백제 개로왕 - 굽실거리는 외교, 과시욕에 버무려진 토목공사
고구려를 정복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은 조악한 수완과 실력의 열세 앞에 수포로 돌아간다. 개로왕은 국력을 깎고 백성들을 혹사시키며 껍데기뿐인 위대한 백제를 만드는 것을 선택했다. 마침내 고구려의 대군이 한성 백제로 물밀듯이 내려오고 있었을 때, 백제의 신민들은 왕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 고려 의종 - 호화로운 취미생활, 무분별한 총신의 등용
차라리 무능하면 좋았을 것을, 문무를 겸비했던 왕은 신하들을 업신여기고 내키는 대로 쓰고 버렸다. 신하들은 왕의 총애를 받고자 온갖 더러운 짓을 벌였고, 이 중 버림받은 무신들은 마침내 무신의 난을 일으킨다. 한때 총애했으나 이제 모반을 일으킨 신하에게 마지막 술을 받아 마신 왕은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채 연못 속에 내버려졌다.
* 고려 공민왕 - 난잡한 사생활, 잘못된 인사 정책
몽골과 부원 세력의 압제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을 찾으려 한 개혁군주 공민왕. 그러나 그의 찬란한 업적에 가린 어둠에는 온갖 기괴한 것들이 숨어 있다. 어떤 신하도 믿지 못한 불신, 충신과 총신을 모조리 도륙하여 이룩한 권좌. 탄생하지 않는 후계자와 유일하게 신뢰했던 아내를 잃었을 때, 그는 온전히 미쳐버렸다.
* 조선 연산군 - 이기심에 의한 재개발, 왕의 수족이 된 법률
최초의 적장자 계승자. 그 자체가 막강한 권위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권위를 잘못 휘두른 연산군은 결국 폭군이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춘 폭군의 종합 선물세트가 되었다. 자기 과신, 편애에서 비롯된 악행은 백성들의 민가를 강제 철거하고 금표를 설치하면서 정점에 이른다. 몰락 직전 연산군의 조선에는 신하도 없고, 백성도 없이, 오로지 왕만 존재했다.
* 조선 광해군 - 지나친 부정축재, 어처구니없는 토목공사
전란의 위기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등극한 광해군은 특유의 인내심과 영민함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려 했다. 그러나 밑바닥부터 불안했던 그는 형제들을 도륙하고 신하들을 저버렸으며, 명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뇌물을 긁어모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무리한 토목공사를 시행했다. 자신과 다른 당파를 차례차례 제거해 간 광해군과 대북은 마침내 고립되었고, 반정을 통해 그들의 세상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