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시집에 지난 역사가 오롯이 담기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언급이나 나열이 아니라 거기에 휘말린 삶들의 목소리와 비참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은 특히 어렵다. 그것은 시인 자신이 역사 속으로 깊이 잠행해서, 지워진 또는 은폐된 삶을 살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형로 시인은 이번 시집 『숨비기 그늘』에서 그 모험을 감행한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짓밟은 삶 자체다. 구체적으로 김형로 시인은 이 시집에서 제주 4?3과 광주 5?18, 그리고 여타 현대의 참극들에 희생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들려준다. 시집의 2부는 제주 4?3에 3부는 광주 5?18에 그리고 4부 역시 부조리한 현실에 짓밟힌 현장과 삶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