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깊은 경외감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하리라 _손보미(소설가)
휫브레드상, 오헨리상, 래넌상, 왕립문학협회상 수상 작가
시대가 추앙하는 이야기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 문학의 정수
무라카미 하루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줌파 라히리, 줄리언 반스, 조이스 캐럴 오츠 등 동시대를 견인하는 작가들의 작가인 윌리엄 트레버의 장편소설 《운명의 꼭두각시》가 출간된다. 이는 《비 온 뒤》《여름의 끝》《루시 골트 이야기》《그의 옛 연인》《밀회》에 이어 한겨레출판이 펴내는 트레버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윌리엄 트레버는 2016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하는 최고의 단편작가’로 칭송되었으며, 휫브레드상, 오헨리상, 래넌상, 데이비드 코언상, 왕립문학협회상 등 다수의 영예로운 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부커상과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수차례 거론되며 현대 영문학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운명의 꼭두각시》는 섬세한 문장으로 인간사 고독과 인생의 비참을 그려내면서도 끝내 구원의 실마리를 부드럽게 선사하는 윌리엄 트레버 문학의 마중물이자, 《여름의 끝》《루시 골트 이야기》《펠리시아의 여정》에 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출간 즉시 휫브레드상을 받은 이 작품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윌리엄 트레버의 최고작”이라 평했다. 영화 《레 미제라블》(1998)을 만든 사라 래드클리프(Sarah Radclyffe) 제작, 팻 오코너(Pat O’Connor) 연출로 영화화되었다.
단지 사랑했을 뿐인데 몰락해버린 한 가문의 비극
잔혹한 운명을 향한 애절하고 경이로운 이야기
여기 운명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휘말린 사람들이 있다. 아일랜드 소도시 페르모이, 킬네이라 불리는 저택에 사는 퀸턴가(家). 19세기 초 영국 여성과 아일랜드 남성이 만나 이룬 퀸턴가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국경을 넘는 사랑으로 대를 이어 존속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고조되는 독립투쟁을 막고자 영국은 속칭 ‘블랙 앤드 탠즈’를 아일랜드에 파견하고, 그들의 첩자가 킬네이 저택 나무에서 혀가 잘린 상태로 목매달린 채 발견되면서 잔혹한 운명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악명 높은 블랙 앤드 탠즈가 첩자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한밤중 킬네이를 급습하고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다. 아홉 살이던 주인공 윌리 퀸턴은 여동생과 아버지, 퀸턴가의 사람들 전부를 잃고 폐허가 된 킬네이에서 도망쳐 알코올중독자인 어머니와 불안한 생활을 이어간다. 끝나지 않는 악몽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던 윌리는 어느 날 찾아온 영국인 외사촌 메리앤을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진다. 반복되는 운명의 장난, 운명의 꼭두각시들처럼 메리앤은 윌리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또 한 번 쓰라린 상처를 마주한 윌리가 돌연 자취를 감추며 다시금 비극의 서막이 메아리친다.
군인들의 학살 이후 킬네이가 그랬듯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참담한 세계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고결한 용기
아일랜드인의 슬픔을 기리는 트레버의 따스한 시선
〈워싱턴포스트〉는 《운명의 꼭두각시》를 “강력하고 지울 수 없는 아일랜드의 애환을 부드럽게 기리는 용기와 사랑의 이야기”라고 평했다. 실제로 작중 퀸턴가의 고장인 코크주 출신 작가 윌리엄 트레버는 남자친구를 찾고자 홀로 고독한 여정을 떠나는 아일랜드 소녀 펠리시아(《펠리시아의 여정》), 아일랜드 군인 출신 골트 대위의 실종된 딸 루시(《루시 골트 이야기》)의 서사를 통해 그 시절 아일랜드 구성원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세계를 묘사해왔다.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끝없이 이어지는 남북전쟁,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을 향한 초법적 살인과 탄압. 그 이야기의 본령과도 같은 《운명의 꼭두각시》는 잔학한 운명 앞에서도 살아남기를 포기하지 않는 안쓰러운 인물들과 그를 향한 트레버의 따사로운 시선을 찬연한 문장들로 선보인다. 한순간에 몰락한 퀸턴가, 사라진 사랑을 찾아 폐허에 발을 들인 메리앤, 살인자가 되어버린 윌리, 부모의 과거를 알고 미쳐버리는 딸 이멜다. 그들의 삶은 예고된 비극으로 질주하는 듯하지만 그 면면에는 퀸턴가의 아픔을 보살펴주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있고 폐허의 한 자락에 보금자리를 일구는 사람들의 온정이 자리한다. 냉혹한 운명 위로 쏟아지고야 마는 섬세하고 가식 없는 한 줄기 희망.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트레버의 소설을 읽으며 체감하는 “특별한 포옹”의 순간이며, “운명이 우리에게 비극을 가져다줬을 때, 기대한 적 없고 꿈꾸는 것과 정반대의 삶을 선사했을 때”(손보미 소설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용기 있는 대답이기도 하다.
난도질당한 삶, 믿을 수 없는 상실, 마음의 궁핍.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운명의 꼭두각시》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가혹한 운명이 모든 것을 태워버린 후, 어떤 위로나 용서가 불가능할 것 같은 참담한 세계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들이 있다고, 그러니까 그것들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멈추지 말라고. 그 외롭고도 고결한 응시 끝에 결국 당신의 마음속 한 줄기 빛처럼 쏟아지고야 마는 “특별한 포옹”의 순간. _손보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