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맛

한국인의 맛

  • 자 :정명섭
  • 출판사 :추수밭
  • 출판년 :2021-03-04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2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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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카레부터 믹스커피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이 즐기는 음식들의 역사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를 해명하고자 한 인문교양서. 근대에서 비롯된 음식들을 통해 우리가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입맛은 사실 최근에 길들여진 결과임을 밝힌다. 나아가 ‘음식의 고향은 그것을 먹고 있는 바로 그곳이다’라는 결론을 통해 역사를 상징하는 음식 문화는 언제 비롯되었느냐는 기원이 아니라 지금 누가 누리고 있는지에 따라 정체성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문화사, 생활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추리소설처럼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전작인 《38년, 왜란과 호란 사이》(2020년 세종도서)의 형식을 잇고 있으며, 근대와 경성이라는 배경의 연속성에서 보자면 ‘경성 셜록’ 류경호 등 등장인물들을 공유하는 《별세계 사건부》(시공사, 2017)의 후속작이다.



○ 음식에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는 역사가 된다

“두 유 노우 김치?” 지금이야 농담처럼 취급되지만 얼마 전까지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들이 처음 받는 질문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진부한 물음에는 자부심과 콤플렉스가 얽힌 복잡한 역사관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자신들의 전통음식에 대한 감상을 질문하며 이방인을 시험하는 풍경이 한국에 국한된 사례만은 아니다. 인간에게 음식은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주인공이 각성하는 데 돼지국밥이 주요 소재로 쓰이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은 주인공이 유년기를 떠올리는 촉매로 활용된다. 《허삼관 매혈기》에서는 돼지 간볶음과 황주를 통해 하루 벌어 하루를 넘기는 서민들의 삶을 은유하며, 《칼의 노래》에서는 역사의 격랑에 휘말린 개인의 삶을 밥을 넘어가게 하면서도 속되고 비린 냄새를 풍기는 젓갈에 포갠다.

역사와 음식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살아간다는 것이란 섭취와 배설의 연속 과정이기에 사람을 굴러가게 만드는 연료인 음식은 살아가는 인간에게 켜켜이 쌓여 기억이고, 삶이 된다. 나아가 먹을거리에 대한 각각의 경험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되면서, 음식은 음식 이상의 의미로 발전한다. 끼니를 함께하는 사이를 가리키는 식구食口가 집단의 최소단위인 가족을 가리키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인간이 축적한 시간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음식은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곧잘 지목된다. 그것이 우리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를 알면서도 외국인에게 “두 유 노우 김치”를 묻는 이유이자, 주변 국가의 ‘공정’에 휘둘리는 우리 음식들에 얼마나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 한국인의 입맛으로 알아보는 한국인의 정체

“당신이 먹은 것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예찬》(1825)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집단 서사인 역사적 범위로 넓히자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먹고 있는 음식이 우리의 역사를 말해준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정체성에 대한 증거로 여기며 시절의 변화에서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음식들이 사실은 현대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동시에 우리는 매일 먹는 음식들 안에 얼마나 절절하고 극적인 사연이 담겨 있는지 모른 채 마주한 밥상을 그저 일상의 풍경으로만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대한제국 시절 고종이 우아하게 마시던 커피가 한국인의 ‘습관’이 된 데에는 엉뚱하게도 전기밥솥이 가정마다 보급된 사연이 도사리고 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정통 논쟁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냉면 육수의 맛은 오래전부터 평양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 한국전쟁을 통해 한강 이남까지 퍼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화학조미료 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의해 감칠맛이 사대문 안 냉면집들에 스며든 결과다. 분식집의 대표 메뉴인 김밥에는 보름음식인 김복쌈인지 아니면 일본에서 건너온 노리마키인지 그 기원을 놓고 벌어지는 ‘문화전쟁’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먹은 것이 우리를 말해준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음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



○ 길들여진 한국의 입, 만들어진 전통의 맛

이 책은 우리에게 ‘한국의 맛’으로 인정받은 아홉 가지 음식의 역사를 추적하는 인문교양서다. 한국인의 입맛으로 보는 한국에 대한 정체론이며, 일상의 음식들이 가진 연원을 추적하는 것부터 문화적, 역사적 의미까지 두루 짚어보는 대중문화 비평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입맛’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한국인들을 아우를 수 있는 공통된 기억이 있어야 하며, 입맛을 길들이기 위한 시간도 확보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들을 통해 한국인의 입맛이 된 냉면, 카레, 커피, 김밥, 돈까스 등을 살펴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대부분의 음식들이 기원과는 상관없이 일제 강점기 무렵에 수용되었다. 즉 한국인의 입맛이란 지극히 짧은 기간 동안 길들여진 것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들 또한 대부분 근대 이후 급하게 발명된 결과다.

둘째, 한국의 대표음식들은 근대 이후 한반도를 강제 점령한 일본과 서구의 음식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되, 수용 이후 철저하게 현지화하면서 왜색 또는 외색을 완전하게 지우는 방향으로 바뀌어 나갔다.

셋째, 군 막사에서 유래해 민간으로 퍼졌거나, 먹고 마시는 것이 근대화의 바탕을 이룬다고 확신했던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빠르게 정착했다.

넷째, 근대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익숙하지 않았던 감각, 즉 기름지고 달콤하면서 빠르고 효율적인 느낌을 제공해줬다.

다섯째, 시민들의 소득이 올라가고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근대 이후 익숙해진 달고 자극적이며 기름진 맛은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면서 조금씩 경원시되어갔다.



얼마 전 한 음식 평론가가 요식업 경영 전문가의 요리 지향을 비판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요식업 경영 전문가가 추구하는 빠르고 획일적이면서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달고 기름진 특성이야말로 앞서 밝힌 바대로 오늘날 한국인들 입맛의 바탕이 되는 ‘근대의 맛’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요식업 경영 전문가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입맛’을 제대로 짚어냈다고도 할 수 있다. 나아가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문화사는 이러한 근대의 맛을 부정하며 백 년의 전통에서 결별하고 새로운 맛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즉 근대 이후 한국인의 피와 살이 된 음식에는 서구를 따라잡고자 했던 근대 일본과, 그런 일본으로 상징되는 근대를 다시 가쁘게 넘어서고자 한 현대 한국 각각의 지향과 지양이 담겨 있다.



○ 한국사 아홉 장면으로 보는 음식, 아홉 가지 음식으로 보는 한국사

이처럼 밖에서 들어와 한국인들의 입맛을 길들였고 한국인을 형성했으며, 이윽고 소화되어 한국의 것이 된 음식들을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아홉 가지로 추린다.

- 아지노모도(MSG): 인공적인 맛이 가장 한국적인 감칠맛이 되기까지

일본인들이 보다 많은 음식을 먹어 체격이 커질 수 있도록 개발된 아지노모도가 한반도 전역에 퍼지는 과정과, 그렇게 입맛이 길들여진 이후 반대로 MSG로부터 한국인들이 벗어나는 순간까지의 한국현대사를 살핀다.

- 짜장면: 짜지앙미엔이 자장면을 거쳐 짜장면이 되기까지

임오군란 이후 들어온 산둥의 전통요리가 한국인의 소울 푸드가 되기까지의 과정, 저임금 중국인 노동자들의 식사에서 출발해 특별한 날에나 먹었던 고급요리를 거쳐 배달음식의 대명사가 된 흐름을 훑어나가며 한반도 내 이주민 수난사도 함께 짚어본다.

- 돈까스: 기름진 고기에 다시 기름진 튀김옷을 입힌 요리가 밥상에 오르기까지

일본인들이 덩치 큰 서양인들을 따라잡고자 익숙하지 않은 고기를 억지로라도 먹기 위해 돈까스를 개발한 과정과, 그런 일본을 넘어서고자 한국이 돈까스를 받아들인 다음 다시 우리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 설탕: 가장 ‘문명개화’적인 맛이 가장 촌스러운 맛이 되기까지

좋은 맛을 꿀에 비유하듯이 단맛은 조선인들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생소하고 귀했던 맛이 어떻게 흔해진 맛이 되었으며 나아가 배척해야 하는 맛이 되었는지를 일제가 한반도에서 시험한 사탕무 재배 과정을 함축적으로 도려내 살펴본다.

- 카레: 식민지의 음식인 마살라가 다시 식민지인 조선인의 밥상에 오르기까지

병력 유지를 위해 인도음식인 마살라를 받아들여 커리를 만든 영국과, 러일전쟁 이후 마찬가지 이유에서 영국의 커리를 받아들인 일본을 거쳐 조선인의 밥상에까지 오르기까지, 군대 및 근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카레의 전파 과정을 통해 제국주의의 동인을 분석한다.

- 단팥빵: 전쟁에 진 사무라이가 꿈꿨던 음식에서 전쟁 이후 한국 아이들이 꿈꿨던 군것질까지

세이난전쟁 이후 칼을 빼앗긴 사무라이가 단팥빵을 개발하고, 전쟁을 피해 한반도로 건너온 일본인이 한국인들에게 단팥빵을 퍼뜨렸으며, 전쟁이 끝나고 한반도로 돌아온 이들이 그 맛을 계승해 단팥빵을 정착시킨 아이러니한 역사를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전개된 한국의 혼분식 장려 정책과 함께 소개한다.

- 김밥: 후토마키와 김복쌈이 김밥과 캘리포니아 롤이 되기까지

보름날마다 한국인들이 먹었던 전통음식인 김복쌈인지 아니면 일본에서 건너온 노리마키(또는 후토마키)인지 김밥의 기원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을 배경으로 한국 문화의 특성과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톺아본다.

- 팥빙수: 일본의 카키코오리가 한국의 팥빙수가 되어 일본으로 역수출되기까지

빙수인 카키코오리가 한국으로 건너와 씹는 맛이 강조된 팥빙수로 변해 가는 과정과, 다시 팥빙수에서 팥이 빠진 과일빙수가 되어 일본으로 역수출되기까지의 역사를 소개하며 하나의 문화가 생성되고 변화하며 확산되고 소멸하는 흐름에 대해 고찰한다.

- 커피: 양탕국 또는 아메리카노라는 바다 건너 온 것이 가장 한국적인 맛이 되기까지

대한제국 시절 고종과 손탁이 우아하게 나눴고, 일제 강점기 모던 뽀이들과 불한당들이 다른 세상을 꿈꾸며 마셨으며, 한국전쟁 시기 미군에게서 흘러나온 인스턴트커피가 오가던 암시장을 거쳐 그 자식들인 장발 대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나눌 때 놓였던 다방 ‘꽁피’와, 취업한 다음 야근하며 마신 음료인 아메리카노까지 한국 현대사 자체인 커피의 한국사를 조망해본다.



○ 탁월한 역사 발굴꾼 정명섭의 신작, 그리고 ‘경성의 기이한 역사 이야기’ 후속작

교양방송과 라디오, 팟캐스트,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주는 저자는 《38년, 왜란과 호란 사이》(2020년 세종도서)에 이어 소설과 역사교양서를 결합한 구성을 이 책에서 다시 한 번 시도한다. 그럼으로써 자칫 역사교양서로 한정될 수 있는 책의 범위를 넓혀, ‘경성 홈즈’인 류경호 기자가 인천항의 음침한 뒷골목부터 군산의 일본인 거리까지 조선 전역을 뛰어다니면서 한국인의 입맛이 바뀌어가는 백 년의 역사를 샅샅이 탐문하는 과정을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한다.

한국인의 정체가 실은 백 년 전에 발명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 다만 이 책에서는 새삼스러운 고발이 아니라 보다 정제된 권유를 건넨다. 김수영의 말처럼 “역사는 역사다”라는 것이다.

어떤 음식의 시원을 찾는 것은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최초를 가리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한국인들의 집단 서사를 해명하는 근거로서는 빈약하다. 지금 여기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들은 근대 이후 들어온 것이든 수백 년 전부터 전해져온 것이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분명히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한편으로 완전히 우리 것으로 소화해 지금은 일본에 역수출하는 ‘한국의 맛’이 되었다. 일본의 카키코오리가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만의 팥빙수로 변하고, 다시 일본으로 역수출되듯이 음식이라는 문화는 돌고 돈다.

따라서 희미한 기원을 찾아 원조 논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여기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 어떤 이들이 제대로 문화로 소비하는지를 살피는지가 그 음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더 중요하다. 음식의 고향은 그것을 먹고 있는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김치 공정부터 김밥 원조 논쟁에 이르기까지 식탁에서까지 경계선이 그어진 채 치열하게 문화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에 대한 이 책의 대답이다.



음식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이 책이 새로운 감각의 역사책을 찾았던 독자들께 많은 호응을 얻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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