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를 위해서라면 뭐든 짓밟고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친일파 유 소장의 막내딸, 피아노 치는 댕기 머리 유 봄이.
겉으론 유복한 집안에서 별걱정 없이 잘 지내 온 것 같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언니 유진이와 비교당하며 부단히도 식구들에게 구박을 받고 살았다. 하지만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꿋꿋이 자란 조선의 캔디라 할 수 있겠다.
복잡한 나랏일과 집안의 일보다는, 내일 있을 레슨이 두렵고, 꿍쳐두었던 돈으로 만일당의 단팥빵을 사 먹는 일이 즐거운 단순한 대학생 봄은 조선 최고의 부호이자 세도가 구산의 쇼윈도 장남 강준과 생각지도 못한 혼인을 하게 된다.
이 혼인을 통해 항상 험난했던 유 봄이 인생길이 순탄히 풀린다고? 그러니까,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훤칠한 외모에 젠틀한 성격,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진 그를 마다할 여인이 조선 팔도에 어디 있냐 하지만, 그건 다 그자를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다.
"싫다고 너."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모하는 거요?"
자꾸만 저에게 자신의 형을 연모하는 거냐고 묻는 그자,
"내 계획에 이런 건 없었어."
자꾸만 저에게 자신의 계획을 망친다고 하는 그자,
"넌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이해해줄 수 있다고 했잖아."
자꾸만 저에게 영문도 모르는 이해를 구하는 그자.
당최 그자가 하는 '그 일'이 무엇일까? 그자의 일을 이해해주기만 한다면, 늘 추운 겨울 같았던 봄이의 인생에도 봄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