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주의자의 사생활

산책주의자의 사생활

  • 자 :황주리
  • 출판사 :파람북
  • 출판년 :2019-09-03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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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고 사랑하고 머물고 싶었던 모든 순간에 대하여’

딸, 누나, 여자 황주리가 사랑한 사람 그리고 가슴에 아로새긴 이야기



석남미술상과 선미술상을 수상하며 창의적이고 뛰어난 미술 세계를 인정받았던 화가 황주리에게는 또 하나의 특출난 소질이 있다. 바로 문재文才다. 감각을 한눈에 알아본 눈밝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내성적인 소녀는 일찍이 미술에 두각을 드러내었고, 출판사를 운영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책에 둘러싸여 자라며 글을 가까이 접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글에 대한 갈증을 느껴 일간지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여러 권의 에세이를 펴내며 두 권의 소설도 쓰는 분주하고 열정적인 과정을 한평생 이어가고 있다. 그의 글에는 읽는 재미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유머, 순간순간 사라져가는 시대의 얼굴이 있고, 간결한 문장의 아름다움까지 더해져 수필가 피천득의 뒤를 잇는 우리나라 정통 에세이의 드문 줄기로 평가받는다. 그림의 소질을 어머니가 발견했다면, 글의 소질은 저자 스스로가 계발하고 독자가 발견한 셈이다.



『산책주의자의 사생활』은 이런 열정의 산물이다. 중견 서양화가 황주리가 오늘의 자신을 이룬 많은 것들, 그 가운데 가족과 사람 그리고 여행에 대해서 깊은 속내를 털어놓은 그림 에세이로, 10년 만에 출간하는 다섯 번째 산문집이다.

사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딸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주었던 아버지, 아버지의 사업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늘 중심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 한창 일할 나이에 “내가 우려하던 모든 일이 일어났다”라는 글을 남기고 황망히 세상을 떠난 남동생, 사랑이란 느낌을 주었던 강아지 베티까지. 이 세상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가족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저자를 바라보면 어디에서나 당당한 화가라는 수식어를 벗어든 한 명의 사람이 서있다. 기운을 내어 내딛는 씩씩한 걸음걸이, 주변까지 환해지는 화사한 웃음소리, 화려한 원색과 열린 상상력의 화가 황주리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여행할 때 항상 밝은 날만 있진 않다. 밝은 날은 밝아서, 흐린 날은 흐려서 추억이 된다. 인생의 길도 걱정이 쌓여 내공이 되고, 상처가 쌓여 용기가 된다는 것을 60의 고개에서 저자는 담담히 들려준다. 『산책주의자의 사생활』에서 그는 높고 낮은 인생의 요철들마저 당시에는 크고 어려웠지만 결국 가벼운 산책과 같았다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시크하고 당당한 화가의 모습 뒤에 가려진 짙은 인간성을 느낄 수 있는 뭉클하고 따뜻한 58편의 짧은 글들과 26컷의 영혼이 담긴 그림들을 보다보면 저자와 함께 어떤 낯선 골목길이라도 좋으니 저녁 산책을 함께하고 싶어진다.



“괜찮아, 괜찮아.”

똥을 밟아도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산책주의자의 사생활』을 관통하는 정서는 ‘사랑’이다. 어린 날 바닷가 백사장에서 똥을 밟고 우는 저자에게 어머니는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셨다. 50년이 흐른 지금도 저자는 그 말의 온도와 느낌을 기억하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런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저자는 이 책에 담았다. 책에는 저자가 사랑하는 네 가지 주제 총 58편의 글이 실려있다.

1장은 사람과 세상 이야기다. 조금 멀찍이 거리를 두고 대상을 바라보면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심지어 저자는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평소에 좀 얄미운 존재를 만나도 반가울 때가 있다.”(96쪽)고 술회한다. 1장에서는 약간의 거리, 그 사잇길로 접어들어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감동과 웃음을 전한다. 특히 보이스피싱을 당한 이야기인 「그녀 목소리」를 읽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세상을 향한 저자의 순하고 여린 마음을 엿볼 수 있다.

2장은 사랑과 예술 이야기로, 사랑하는 아버지와 동생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자의 심정을 뭉클하게 풀어냈다. 꿈속에서나마 돌아가신 아버지와 춤을 추고 싶은 마음, 죽은 동생이 남긴 핸드폰을 버리지 못하고 그 속에 담긴 음악을 듣곤 한다는 이야기, 이제 세상에 가족이라곤 한 분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마음, 보신탕으로 팔려가는 개를 사서 키운 슬픈 사연 등 작가의 성격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파트다. 〈플라이 투 더 문〉 〈돈 워리 비 해피〉 등 음악에 자신의 아픈 심사를 얹어 읽는 사람이 더욱 깊이 공감하게 한다.

3장은 추억과 단상에 대한 이야기다. 다섯 살 무렵 살았던 광화문 내수동의 막다른 골목 큰 대문집 다다미방부터 자유의여신상이 보이던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 근처 작업실, 어머니가 직접 설계한 건물의 작업실까지,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작업실에 대한 추억과 한국전쟁 당시 형 대신 병사로 나갔다가 실종된 얼굴도 모르는 삼촌 이야기 등, 하루하루 살며 떠오른 단상과 그립고 안타까운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가 들자 건망증이 심해져서 “고마운 사람도 다 잊어버릴까 봐 그게 문제”(145쪽)라는 구절에 이르면, 나이 들며 느끼는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뭉근하게 피어오른다.

4장은 저자가 사랑한 세상, 아프리카 탄자니아부터 남미의 볼리비아 포토시까지, 동유럽 사라예보에서 아시아 마카오까지 전 세계에 찍힌 발자국의 기록이다.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적고 그린 내용이다. 카프카의 도시 프라하가 변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지금은 그리스 산토리니에 가도 예전처럼 전통의상을 입은 할머니들을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 스리랑카에서 만난 마음 따뜻한 사람들에 대한 추억 등, 현실에 순응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과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지면을 통해 잠시나마 전 세계 여행을 함께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책 속에서



그러고 보니 ‘외로운 늑대’도 30년 전에는 없었던 단어다. 30년 뒤에는 다정한 인공지능이나 천사로봇 같은 지금은 없는 따뜻한 단어가 생겼으면 좋겠다. 무거운 캔버스도 들어주고 캔버스에 밑칠도 순식간에 해내는, 늙는다는 일이 두려운 인간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도 해주는 선하고 친절한 인공지능을 그려본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늙을수록 대단한 그림을 그려내는 나의 미래를 꿈꾸며,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속담을 떠올린다.

-69쪽



일부러라도 기운을 내서 씩씩한 걸음으로 걸어본다. 이렇게 우울한 삶의 조각들은 삶이라는 거대한 양탄자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평소에 좀 얄미운 존재를 만나도 반가울 때가 있다. 우리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모두 사는 날까지 행복하라. 이렇게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겨울이면 유독 심해지는 나의 지병이다.

-96쪽



‘아니, 그것도 모르다니요?’ 나는 이제 아무에게도 이런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단 한 순간도 베토벤이나 바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던 적이 없다는 게 신기하다. 그렇게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는 이름들을 떠올린다. 이순신, 세종대왕, 퀴리 부인, 아인슈타인, 에디슨, 슈베르트, 반 고흐, 울릉도, 독도, 사랑, 희망, 우정…… 생각해보니 너무도 많은 것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별안간 나는 안심을 한다. 그중에서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낡거나 죽지 않는 낱말, ‘희망’ 하나는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146쪽



소설을 쓴 작가이자 소설의 내용 그대로 박물관을 만든 오르한 파묵은 ‘사랑은 행복한 질병’이라 말했다. 사랑과 박물관은 추억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관계가 깊다. 그 인상적인 작은 박물관을 돌아보며 언젠가 나도 오르한 파묵처럼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지나간 삶과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을 그곳에 펼쳐놓으리라. 삐걱거리는 낡은 계단, 그곳에서 나누었을 서툰 첫 키스, 오랜 세월 뒤 다시 만난 사람에게 느낀 실망감도 빠져서는 안 될 목록이다. 오르한 파묵이 빠트린 건 사랑의 유효기간이다. 사랑은 변하고 시간은 흘러가도 주고받은 손편지들과 사소한 사물의 흔적들은 끈질기게 영원히 남아있다.

-200쪽



쿠바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되도록 빨리 가길 권한다. 쿠바 사람들에게 “빨리 좀 해주세요.” 하면 “왜 빨리해야 하는데요?” 하고 묻는다.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빨리’라는 단어다. 하긴 우리는 그 ‘빨리’의 정신으로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빨리하는 일은 늘 후유증이 남는지도 모른다. 빨리 걸어온 우리가 돈을 얻었다면, 행복을 잃었다고 말하지는 말자.

-246~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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