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도 당당하게

하루를 살아도 당당하게

  • 자 :황인희
  • 출판사 :니케북스
  • 출판년 :2019-08-19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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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살고 싶은 중년 여성을 위한

거침없는 솔직 에세이!



당당하게 살고 싶은 중년을 위한 거침없는 솔직 에세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중년들을 위한 셀프 토닥 에세이!

나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아파하는 청춘, 꿈과 희망을 상실한 자포자기의 세대! 지금 우리 사회의 키워드는 청춘이다. 기성세대는 그들을 위로하고 보듬고 다독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 나이 든 우리가 잘못한 탓이라고 젊은 세대에게 미안해하고 죄스러워 한다. 그런데 지금의 중년도 젊은 날에는 그만큼 힘들었다고, 이 나이까지 살아 낸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해지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이 책의 저자 황인희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라는 말은 이제 놀랍지도 않고, 120세 인생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장수를 축복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은 노후 준비 없이는 삶이 재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후 준비에는 무엇이 우선일까? 대부분 퇴직금, 재테크, 부동산과 같은 자산 관리를 먼저 떠올릴 테지만 그 못지않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마음 다스리기’이다. ≪하루를 살아도 당당하게≫는 중년 이후의 삶을 당당하게 만들어 가라는, 중년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자존감을 지키는 것



저자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자존감은 자신을 사랑해야만 형성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는 과한 겸손으로 자기를 낮추지 않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인상착의를 “뚱뚱한 50대 아줌마“라 설명하는 거침없는 사람이다. 단점이랄 수도 있는 부분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즉 탄탄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어도 당당하다.

저자가 말하는 중년 마음 관리의 핵심은 ‘버리기’이다. “겉모습을 치장하던 것을 다 버리고 자기 안에 무게를 두어 중심을 잡는 삶이야말로 50대 이후의 삶을 공허하지 않도록 가득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빛을 발하는 가치는 겉모습에 있지 않다. 욕심을 버리고, 허세를 버리고, 진정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어야 나이 듦에 주눅 들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이 커다란 업적이다



저자는 중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찬사를 보낸다. 50년이란 세월을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아온 그대는 이대로 충분히 멋진 사람이라고. 중년에게는 젊은이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경험과 연륜이라는 무기가 있다. 젊은 시절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역경과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결정의 순간들을 지나 “우리의 나이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그 자체가 나름 ‘성공’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치고 올라오는 젊은이들에게 지레 위축되거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이유이다.



중년은 휴식이자 작전 타임



중년인 그대, 지금까지 했고, 당장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로 가득 찬 일상에 지쳐 다 던져버리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중년이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기 전 휴식 시간이자 작전 타임이라 이야기한다. 이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전반전 분석 없이 어떻게 후반전을 잘 이어갈 수 있을까?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과거에 집착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는 세찬 바람이 사방에서 늘 불고 있기 때문에 예전에 세워놓은 삶의 이정표가 모두 흔들려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다시 설정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정표가 똑바로 서 있는 건지 점검하고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

적절한 휴식은 시간 낭비나 게으름피우기가 아니다. 잠시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느슨해진 신발끈을 묶고, 다시 달릴 준비를 하는 재정비의 시간이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기엔 인생이 너무 기니까.





■ 책 속에서





50대 이후에까지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살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가거나 목숨을 구해도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 있다. 50대 이후의 체중 관리는 보기 좋은 몸매를 만들기 위한 사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건강하게, 최소한 병마에 시달리지 않게 살기 위한 기본 요소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몸매 관리의 비법은 자존감을 지키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50대 이후의 자존감이 다이어트 비법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p.18 〈자존감 다이어트〉 中





웬만하면 50대를 넘긴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큰 사고를 겪었다 하더라도 더 크게 망가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해놓은 것이 없다고 한탄할 일도 아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이 커다란 업적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 여간해서는 욕심껏 살기 어렵다. 다만 고난의 세월을 되풀이해야 할 뿐이다.

젊음이 부러워지면 좋았던 젊은 시절이 아니라 고생스러웠던, 벗어나고 싶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때 얼마나 심사숙고하여 그런 결정들을 내렸는지를 상기해보라. 그러면 우리의 나이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그 자체가 나름 ‘성공’이었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p.25~26 〈나 돌아가지 않을래!〉 中





사실 이런 방식의 말하기는 ‘대화’라고 할 수 없다. 마주보고 앉아서 말할 뿐 각자 나란히 서서 자신의 앞만 보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대화라는 것의 양상이 이렇게 변해가는 이유는 ‘폼’ 잡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그런 열망이 커지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첫째는 그만큼 자신의 분야에서 아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름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었기 때문에 할 말도 많은 것이다. 둘째는 현직에 있을 때와는 달리 자신의 전문성을 펼쳐놓을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존재감이 점점 떨어진다는 위기에서 더 말이 많아지는 것일 수도 있다.

p.38~39 〈폼, 제대로 잡자〉 中





“나이가 들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섭리이지. 나이 들어서는 작은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크게 봐야 한다고 그냥 말로만 하면 사람들이 안 들어먹을 거 아냐. 그래서 아예 작은 것은 못 보고 큰 것만 볼 수 있게 만들어버린 거야. 그런 하느님의 섭리가 노안으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 그러니 노안은 곧 가까운 것, 작은 것을 못 보는 눈이 아니라 큰 것,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지. 이런 눈을 부여받은 것을 오히려 감사해야 하잖아. 역시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해.”

p.61 〈신의 섭리는 오묘해〉 中





나이가 들면서는 내게 생긴 병을 혼자만 끼고 앉아 끙끙거릴 일이 아닌가 보다. 자식 자랑 손자 자랑하면 다른 사람의 빈축을 사지만 병 자랑을 하면 동병상련의 위로를, 아니면 최소한 그 병을 이길 수 있는 정보라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기계를 오래 쓰면 낡아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50년 넘게 쉬지 않고 가동하는 기계가 인간의 육체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몸에 고장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보다 게으르거나 탐욕스러운 삶을 살아서 병이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병이 생기면 부끄러워하지도 숨기지도 말고 자랑하자. 그만큼 열심히 육체를 움직여왔다는 증거이니까.

p.75~76 〈병도 자랑거리다〉 中





난 가끔 50대인 우리 나이에 맞는 사랑의 감정은 ‘서로가 안쓰럽게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무거운 짐을 들 일이 있으면 기운이 펄펄하던 남편도 허리며 팔이며 무릎이며 시큰거릴 테니 조금이라도 내가 덜어줘야겠다는 생각, 늙어가는 것을 서글퍼하면 다른 일로라도 용기를 북돋워 주고 싶은 마음,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내가 조금 희생을 하더라도 하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 서로가 건망증 때문에 낭패당하지 않도록 챙겨주는 마음, 사고 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또 다른 모습의 사랑이 아닐까? 그렇다고 내가 무거운 물건을 무리하게 들 일도, 희생할 일도 별로 없다. 나를 사랑하는 남편도 나에 대해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남편은 요즘 부쩍 내게 꾸준한 운동과 자신과 같은 취미 활동 갖기를 권한다. 운동을 권하는 것은 “당신과 가능한 한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라는 표현이고 같은 취미 활동을 권하는 것은 “당신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고 싶어” 혹은 “같은 취미를 즐기면서 늘 함께 있고 싶어”라는 간접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들 앞에는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라는 말이 생략돼있고.

p.88~89 〈사랑의 모습은 변한다〉 中





나이 든 사람은 소설 쓰지 말라는 그 교수의 말은 틀렸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소설을 써야 한다. 삶의 길이가 길면 그만큼 치유해야 하는 상처도 많게 마련이니까. 상처를 치유하는 데 소설만큼 좋은 도구가 없으니까.

p.106 〈치유를 위한 소설 쓰기〉 中





남 앞에 당당해지려면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리 내서 감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와락 끌어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즐거워하며 달려들고, 슬프면 눈물을 감추려들지 말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더! 내가 나름대로 공들여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해 숨기려 하지 말고…….

p.121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中





딱하다는 표정을 연신 짓던 남편이 말한다.

“하긴 나이 들어 이빨이 약해지는 것도 신의 섭리 중 하나일지도 몰라. 소화 기관은 약해지는데 이빨만 튼튼하면 계속 거친 음식을 먹어댈 테고 그러면 소화 기관에 더 많은 무리가 가겠지. 우리는 몸의 여러 부분이 여기저기 한꺼번에 망가진다고 한탄하지만 여러 기관에 노화가 나란히 오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것도 일종의 조화인 것이지.”

문득, 나이가 들면서 단단한 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 굳이 꽉꽉 씹어 먹으려 하는 것은 무리한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찾아보면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도 내 입을, 내 몸을 즐겁게 해줄 것은 얼마든지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여러 가지 일도 내 안에서 부드럽게 녹여낼 수 있어야 내 삶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p.126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中





이제껏 끊임없이 일을 해왔고 호화판으로 사치하며 살지도 않았는데 벌어놓은 여유 자금이 없다. 나이는 들어 몸의 여기저기서 노쇠의 조짐이 나타나는데 노후 준비는 하나도 안 되어 있다. 그런데 하는 일은 다 잘 안 된다. 우리 부부가 일부러 행운을 피해서 다니는 것 같았다. 너무 정직하고 원칙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를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어리석은 생각마저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민해도 좀처럼 답은 나타나지 않았다. 위기를 뚫고 나갈 길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였다.

“황 선생에게는 휴식이 필요해요.”

놀라운 말이었다. 당시 나는 투 잡, 쓰리 잡이라도 해서 경제적 위기를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휴식이 필요하다는 그 말이 역설적이게도 내게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p.138 〈그늘에 멈춰서라〉 中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후회해 본 일이 별로 없다. 삶은 천천히 달리는 기차와도 같고 나는 튼튼한 다리를 가져서 내가 원하면 중간에 내려 딴 짓을 하다가 다시 기차를 따라가 올라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천천히 달리는 기차조차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내 다리에 힘이 빠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이 기차에 타고 있어야지 어설프게 한 번 내리면 영영 기차를 놓쳐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마저 든다. 그러니 이제 다른 길을 넘볼 엄두는 못 내고 아직도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만 커진다.

하지만 후회는 접어버리기로 했다. 어떤 길을 걸었더라도 지금 나는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운명론적인 얘기가 아니다. 이제껏 했던 그 모든 결정이 다 내가 내린, 당시로서는 최선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p.185 〈나를 키운 2퍼센트의 결핍〉 中





나를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훨씬 더 마음이 편해지고 스스로 당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나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나는 일생 공명심에 사로잡혀 살았고 아직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난 잘난 척을 위해 웬만한 금전적 손해도 감수하지요.”

“나는 공자님이 비판한 소인과 간신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약간 의아해한다. 어떻게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하고. 그러면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잘난 척에 대해 쐐기를 박는다.

“공자께서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논어〉 위정편17). 나는 나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니 스스로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나은 것 아닌가요?”

나이가 들수록 내가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추구했던 사람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할 일이다. 본질은 변치 않는다. 그러니 솔직하게 본질을 인정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나를 편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p.202 〈본질은 변치 않는다〉





“소년 시절 가졌던 장래 희망을 이뤘든 못 이뤘든 이제 그 일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 그럼 그 다음에는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야 하지? 평균적으로 볼 때 우리가 앞으로 살 날이 50년 가까이 남았는데 희망이나 계획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막막한 일이 아닐까? 우리에게 분명히 ‘장래’가 있는데 왜 ‘희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지? 일생에 ‘장래 희망’을 한 번만 가져야 한다고 누가 그랬어? 우리에게도 장래 희망을 가져야 할 이유와 권리가 충분히 있어. 나? 나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게 장래 희망이지. 그래서 이 나이에 학교에도 다니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해보잖아.”

p.216~217 〈장래 희망은 무엇인가요?〉 中





나이 든 사람이 궁금해 해야 할 세상은 젊은이들의 세상이 아니다. 그 시절은 우리가 이미 다 살아봐서 뻔하게 알고 있다. 지금은 그 시절이 아름답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 젊은 시절은 갈등과 번민과 불확실로 가득 찼던 때이다. 심지어 젊은 세대의 삶을 알려줄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을 기피한다. 이미 다 알고 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갈 필요도 없는 젊은 시절을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우리보다 연세 드신 분들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삶이다.

젊은 사람들이 내게 다가올 때는 그들이 내 삶을 배우려고 할 때로 충분하다. 혹시 젊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면 내 삶을 젊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은 삶으로 만들어야 한다.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내 삶을 ‘배우고 싶은 삶’으로 만드는 것에 더 몰두해야 한다.

뒤돌아볼 틈이 없다. 더 늦기 전에 앞으로 펼쳐질 노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비결을 얻어야 한다. 그 비결은 우리보다 앞서서 노년을 경험하고 있는 선배들에게서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길은 뒤가 아니라 앞에서 찾아야 한다.

p.225 〈길은 앞에서 찾아야 한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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