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용기

포기하는 용기

  • 자 :이승욱
  • 출판사 :북스톤
  • 출판년 :2019-07-29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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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

포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도 그러한가요?”

정신분석가 이승욱이 말하는

진정한 나를 아는 용기, 온전한 나를 찾는 용기



*이 책은 2013년에 출간된 《포기하는 용기》(쌤앤파커스)를 수정, 보완한 개정판입니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괴로울까요?”



많은 이들이 이런 의문을 품고 산다. 누구보다 내가 소중한데, 현실에 치이는 삶에서는 소중한 나를 지키기도 어렵고 되찾기도 어렵다. 부모님이, 학교에서, 사회에서 일러준 대로 성실히 공부하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지금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외로울까? ‘자존감 도둑’들만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를 지키며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상담실을 찾아 공허함을 호소하며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조금이라도 일찍 나를 찾겠다며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포기하는 퇴사도 불사한다. 퇴사하고 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소셜미디어에는 수많은 ‘좋아요’와 응원의 댓글이 달린다. 그러나 여행에서 힘을 받고 돌아와도 잠시뿐, 또다시 일상의 불안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우리에게 이 책은 묻는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지는 않았느냐고. 또한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포기에도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공공상담소’ 정신분석가 이승욱이 들려주는

온전한 나를 찾는 포기의 지혜



정신분석가 이승욱은 수만 명의 청취자에게 심리치유의 길을 안내하는 팟캐스트 ‘공공상담소’ 운영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포기하는 용기’에 대해 말한다.

지혜로운 포기를 위한 첫걸음은 내 욕망과 남들의 욕망을 구분해내는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 좋은 사람, 착한 딸, 듬직한 아들, 헌신적인 엄마, 책임 있는 가장, 씩씩한 남자, 부드러운 여자…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실로 다양하다. 어려서는 부모의 기대로, 사회생활의 규범으로, 때로는 멘토의 조언으로, 성공방정식의 형태로 전해지는 ‘삶의 가이드’를 따르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짬이 없다. 아니, 어느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된다. 열심히 노력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다. 남들의 욕망을 없애야 온전한 나로서 살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다양한 심리학 이론과 내담 사례를 바탕으로 포기의 지혜를 전한다. 집에 가둬서라도 아들을 복종시키고 싶은 인숙 씨의 불안, 정희 씨가 폭력남편과 이혼하지 못하는 이유, 외도한 아내와 헤어지지 못하는 정균 씨의 의존, 겉보기엔 멀쩡한 윤석 씨 내면의 불안과 지질함, 자기 이야기를 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공통점, 고등학교 친구들을 등 뒤에 세워놓고 공부하는 대학생의 사연 등, 증상은 각양각색이지만 모두 포기하지 못한 무언가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불안과 두려움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저자는 내 안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어릴 때 부모님의 말 한마디가 일생의 강박관념을 만들기도 하고, 나의 불안이 자녀의 불안으로 대물림되어 또다시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추적해가는 것은 때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고통을 피하려다 눈덩이처럼 더 큰 괴로움을 만드느니 차라리 고통의 근원을 만나 대화해보자. 그것이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불안한가, 나는 정말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인가, 왜 나는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나… 이제 나의 역사를 추적해볼 시간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자신을 새롭게 만나도록 돕는 사려 깊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버린다는 말은 정확히 어떤 뜻일까요? 이는 세상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욕망’을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끄들리는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욕망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정말 내가 원하는 스스로의 욕망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주체의 욕망desire of subject’이라 합니다. 지금껏 나를 가동시켰던 세상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desire of the other’입니다. 이것을 버리면 그다음부터 주체의 욕망을 찾게 되고, 그것으로서 내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노파심에 사족을 하나만 붙이겠습니다. 세상을 버리라고 해서 정말 직장을 그만두거나, 국제 노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좀 더 영악해져도 됩니다.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찾을 때까지 하던 일은 계속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라면 직장을 계속 다녀도 됩니다. 대신 마음에서 직장을 버려보세요. 즉 직장이 내게 욕망하라고 한 것을 버려보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이 내게 욕망하라고 은밀하게 강요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똑똑하게 보일 겁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이런 작업을 하면서 마침내 삶의 자유로움을 경험하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아등바등 집착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자기 욕망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원래 자기가 원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 1장 ‘당신이 원하는 것은 누구의 욕망인가요?’



도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타인들이 만들어놓은 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목숨 걸게 되었을까요? 설마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하는 존재는 아니었을 것 아닙니까?

아뇨, 안타깝게도 사실 우리는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우리 성격의 많은 부분은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형성된 것입니다. 저는 정신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경우를 흔히 보았고,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아주 조용한 성격에, 자기주장도 별로 하지 않고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살펴서 원하기 전에 먼저 도와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런 성격을 고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과도하게 타인을 배려하고 자기 의견은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성격이 스스로도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왜 그런 성격이 형성되었는지 탐색해보았는데요, 마침내 그녀의 아주 어린 시절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그녀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마당에서 조용히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집안일을 바쁘게 하던 어머니가 마당을 지나다가 딸이 노는 모습을 보고는 “아이고, 우리 지영이는 혼자서도 조용히 잘 노네, 덕분에 엄마가 편하네”라고 칭찬 한마디 슬쩍 하고 가셨답니다.

이 작은 사건 하나가 그녀의 성격을 완전히 결정지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끼쳤던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단서임은 분명합니다. 그녀는 넷째 딸이었고 밑으로도 어린 동생이 둘이나 더 있었는데, 언니들은 나이 차이가 많아서 그녀와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집안일에 바빴고 많은 자녀를 돌보느라 힘들어하셨습니다. 가운데 낀 그녀는 어머니의 관심과 손길을 충분히 접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날 어머니의 짧은 칭찬 한마디에 그녀는 ‘나는 혼자 조용히 잘 놀아야 엄마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어. 힘든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는 건 이 방법뿐이야’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비약이 심하죠?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들도 벌어집니다. 이런 믿음을 심리학에서는 ‘비합리적 신념irrational belief’이라 합니다.

- 1장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인정에 목숨 건 존재다’



20대 초반의 풋풋한, 한눈에도 아름다운 학생이 부모님과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끔씩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무릇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을 아프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증상을 통해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감기 몸살이 실은 우리가 너무 무리해서 지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강제로라도 쉬게 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간헐적이나마 환청이 들리는 증상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쉽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주로 언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지를 상세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이 젊은 친구는 시험 때만 되면 불안해져서 그런 증상이 심해진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런 불안은 학생들에게 비교적 흔한 증상입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증상이 심해진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소리를 듣는지 물어보았더니 뭔가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여자들의 목소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의 과거 경험과 연관되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심하게 비난받았던 경험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내 울음을 터트리며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놀림과 비난을 받았던 기억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태어나서 그때처럼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하던 친구 그룹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자기와 은근히 경쟁하던 아이가 공부 자료를 빌려달라는 것을 거절한 이후 그 애가 나머지 친구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자신을 따돌렸다고 합니다.

친했던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는 것도 힘들었지만, 공부 자료를 빌려주지 않은 자신이 치졸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답니다. 왕따의 고통을 이겨내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기죽지 않기 위해 공부에 더 매달렸다고 합니다. 공부를 할 때면 친구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면서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럴수록 더 강박적으로 공부에 매달렸고, 결국 친구들보다 더 좋은 학교에 진학했지만 아이의 인생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급기야 공부할 때마다 환청을 듣기 시작했고, 시험이라는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증상도 심해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의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겪은 사람의 감정입니다. 이 학생은 어떤 감정을 내려놓지 못했기에 아직도 그 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일까요? 그때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느껴지는 가장 핵심적인 감정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 애들한테 져서는 안 된다’는 오기와 분노가 같이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몇 해가 지났고, 친구들과 다른 학교를 다니면서도 이 학생은 아직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등 뒤에 세워놓고 공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친구가 한시라도 빨리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네, 실재하지 않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경쟁심이었습니다. 사실은 미안함을 품고 있으면서도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성적으로 앙갚음하려 했던 자신의 고집을 버려야 했습니다.

- 3장 ‘부정적 불안을 생산적 불안으로 되돌리는 법’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우리는 사실 너무나 자주 ‘사랑’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거래행위’를 합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해서 희생하니까, 너는 나에게 이렇게 해주고 우리는 서로 감사하자.’ 실상 이런 거래행위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채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코올 중독인 데다 무지막지한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편이라도 있으면 이혼녀 딱지를 붙이지 않고 살 수 있죠. 또 거기에는 자녀에게 ‘부모를 갖춘 가정’을 제공한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자녀가 원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자녀를 그 거래행위에 집어넣습니다. 아버지가 없어서 당하는 차별이나 설움을 겪지 않게 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런 고통을 겪는 아이를 바라보는 정희 씨 스스로가 두렵고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정균 씨도 그랬습니다. 내가 풍족하게 당신(아내)에게 물질을 베풀 것이니 당신은 오직 나를 위해 희생하고 나만 바라보면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거래행위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상대를 복속시키려는 거래행위는 이런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많은 가정들이 정희 씨나 정균 씨네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일정한 거래행위를 통해 각자의 비극을 만들어내고 고통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희 씨나 정균 씨 모두 고통의 원인, 좀 더 엄밀히 말해 고통이 지속되는 이유는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 3장 ‘선택이 힘든 것이 아니라 손해 보기 싫은 것입니다’



소영 씨는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직업상 자주 집을 비웠고, 소영 씨는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동생을 돌봐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삼남매를 거두면서 아버지의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바깥에서 일을 하셨거든요.

어머니는 힘든 삶을 지탱하면서 자기 감정의 힘든 부분을 장녀인 소영 씨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소영 씨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많이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겼겠지요. 아버지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결국 무능한 아버지로 남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영 씨는 어머니와 자신을 운명공동체로 여기게 됩니다. 이런 관계를 ‘공생관계’라 합니다. 샴쌍둥이처럼 정신이 동체화同體化된 상태라고 할까요. 이는 동일시보다 더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감정적, 정서적 사이클이 같아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니까요. 엄마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엄마가 기분이 나쁘면 같이 나빠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이상하고 엄마에게 죄책감이 듭니다. 그래서 늘 엄마의 기분에 맞춰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불안해집니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누가 명시적으로 시킨 것도 강제적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보면 모든 어머니의 진정한 힘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분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좌우되는 경향이 강한 집일수록 자녀들은 어머니의 기분을 맞추려 노력할 가능성이 더 클 테니까요.

소영 씨와 어머니는 서로가 배우자처럼 살아왔던 겁니다. 타인과 관계 맺는 최초의 방식이자 가장 오래된 이런 방식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영 씨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감정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도 으레 ‘내가 좋으면 너도 좋고, 내가 싫으면 너도 그래야 한다’는 공식을 갖고 있습니다. 심리적인 사이클이 같지 않으면 소외감을 넘어 탈락감을 느끼니까요.

소영 씨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학습된 방식대로, 정서적 공생관계가 아니면 연애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보고 싶으면 너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서로 좋아한다 해도 남녀관계는 서로 다른 성장환경과 상황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정적 사이클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양해되어야 하는데 소영 씨에겐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

- 4장 ‘공생관계 중독 : 너는 왜 나와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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