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

고기로 태어나서

  • 자 :한승태
  • 출판사 :시대의창
  • 출판년 :2018-11-30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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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동물농장 #노동에세이 #닭고기 #돼지고기 #개고기

#맛있는고기 #힘쓰는고기 #인간의조건 #김민식PD추천



당신과 고기 사이에,

한번쯤은 놓여야 할 이야기

“세상의 더 낮은 곳을 보는 사람”(김민식 MBC PD), 작가 한승태가 한국 식용 동물 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자기 자신과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함께한 닭, 돼지, 개 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노동에세이이자 ‘맛있는’ 고기(닭, 돼지, 개)와 ‘힘쓰는’ 고기(사람)의 경계에 놓인 비망록이다.

전작 《인간의 조건》을 통해 꽃게잡이 배에서 편의점에 이르는 여러 일터에서 체험한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를 기록했던 저자는,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는지 4년 동안 일하면서 경험했다. 시작은 “내가 알고 있던 동물이 그곳에는 없었다”는 단순한 충격과 공포로 인한 호기심이었지만, 닭, 돼지, 개 농장을 거치면서 생명의 존엄과 윤리에 대한 문제부터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노동하는 인간의 삶을 담은 담담한 에세이이면서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부터 한국 식용 고기 산업 생태계의 단면에 대한 사회적 관찰까지 다양한 화두들을 제기하고 작가 나름의 그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다.

식용 고기 문화 자체는 결코 야만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쉽게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는 고기들이 생산되는 과정은 생명에 대한 ‘비윤리적인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닐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당신이 집어 드는 와중에 한번쯤은 놓여야 할 ‘고기로 태어난’ 존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멸종 위기로부터 3억 광년 떨어진 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찾아 떠난 노동 여행

동물의 생명에 대해 생각할 때 흔히 밀렵꾼이나 마구잡이 포획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떠올리기 쉽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생명을 위협받는 동물은 단연코 우리가 매일 쉽게 볼 수 있는 식용 동물들이다. 이 책은 멸종 위기로부터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전 세계인의 식용 동물 닭, 돼지와 한국인들의 식용 동물 개가 ‘고기’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통계가 아닌 클로즈업의 방식으로, 노동하고 체험하면서 관찰한 결과물이다. 노동 여행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4년의 시간 동안 한국 식용 동물 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단순하게 머리로 숫자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체를 확인하고 냄새를 맡아보려고 했다. 그곳에서 경험한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를 틈틈이 일기로 적어뒀고, 에세이 형식으로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



고기「명사」

1.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

2. 사람의 살을 속되게 이르는 말.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맛있는 고기들: 시간과 공간의 감옥에 갇힌, 생명 아닌 상품

고기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맛있는’ 고기와 ‘힘쓰는’ 고기. “고기로 태어나서” 스스로의 생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서글픈 운명에 처한 ‘두 고기 이야기’를 이 책은 두루 다루고 있다.

‘맛있는’ 고기들의 생명은 현대 사회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과 속도와 식감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농장에서 가장 자주 쓰는 말은 ‘도태’다. 고기라는 상품으로 태어난 닭, 돼지, 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즉시, 즉 사룟값 대비 판매가격이 낮다고 판단되면 ‘도태’된다. 죽인다, 잡는다가 아닌 ‘도태’다. 하자가 생긴 물건을 처리하는 것일 뿐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식용 동물일지라도 생애 주기만큼은 보장받는다던지, 조금 더 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육된다던지 하는 것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저자가 경험한 거의 모든 농장의 상황이 비슷했다.

닭은 비좁은 케이지에 한 가득 갇힌 채 고기가 될 부위들만 기형적으로 성장을 당한다. 수평아리들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코 푼 휴지를 버리듯 폐기된다. 돼지 농장에서는 육질을 위한 거세가 제대로 된 마취도 없이 진행되는가 하면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전기 충격기가 종종 쓰였다. 모돈의 경우 1년에 단지 40분을 걷고, 그 외의 시간은 먹고 잠을 자면서 스톨이라는 기구 안에서 “동사(動詞)가 필요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적게 먹고 빨리 찌는 규칙이 농장 전체를 지배하고, 이 규칙을 따르지 못하는 돼지는 도태된다. 아프다고 치료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낫거나, 도태되거나, 판매될 때 그 부위를 잘라내면 될 뿐이다. ‘관리’와 ‘위생’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의 환경에서 개 사육과 도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동물 농장의 동물들은 모두들 서로를 쪼아대고 물어뜯는다. 신체 여러 부위에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자연 상태의 닭, 돼지, 개가 절대 그렇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강제하는 시간과 공간의 감옥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과연 이런 식으로 자연과 관계를 맺는 게 온당한 일일까, 생명을 이런 식으로 낭비해도 되는 것일까 저자는 고민한다.

하지만 이는 조금 더 복잡한 맥락을 지닌다. 돈이라면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농장주가 바로 그 때문에 ‘돼지 킥 노노’를 외치는 것과 그 어떤 농장주(또는 기업 사장들)보다도 노동자 인권을 이해하던 이가 ‘사람들 너무 고생하는 것이 안타까워’ 전기 충격기를 허용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개 농장에 대해 비판하기는 쉽지만, 개 농장이 한국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마지막 재기를 위해 손대는 사업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현실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상품성이 있는 일부 동물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기도 한다. 그럼 그렇지 않은 고기들에 대해 상품성을 배제한 채 윤리적으로만 접근하자고 말하는 것이 현실적인가. 맛있는 고기의 문제는 보면 볼수록 단순하지 않다.



힘쓰는 고기들: 저 아래 낮은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승태 이빨 잘생겼네.” 부화장 아저씨들이 저자를 보고 이야기한다. 누구 하나 살면서 치아 한번 제대로 관리 받을 여유가 없었기에 밥을 먹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렸다는 걸 저자는 그제서야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과 비슷한 다른 이들처럼 살았다면 아마도 그곳에서 일을 하지는 않았을 저자는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다양한 일들을 경험한다. 부화장에서 함께 한 가족처럼 모여 술을 마시고, ‘앙골와트’를 남긴 민족의 예술혼에 감탄하며, 한국 남성 노동자와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의 결혼을 축하하고, 이집트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왜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질문 받고, 조선족 아저씨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집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요리들을 맛보고, 한 달에 하루 또는 이틀 쉬며 일하던 중 돌발적으로 주어진 ‘저녁이 있는 삶’에 감동하고, 개 농장 주변 농민들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는 말에 자신이 이론서 한 귀퉁이를 붙잡고 성실한 사람들을 평가하며 교만하게 구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

근로기준법도 합법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노동 환경(최근의 개정 논의에서도 이 업종은 완전히 배제됐다)에서 노동을 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 이곳의 ‘저 아래 낮은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인간의 조건》부터 이어져온 작가의 치열하지만 가난한,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사람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인 것이다.



종의 돌담 앞에서 살펴본 인간과 동물의 경계

이 책은 채식을 주장하지 않는다. 야만적인 고기는 없다. 인간과 인간 아닌 동물이 똑같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용 고기 산업의 단면을 살펴보면서, 저자는 동물보다도 “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과연 ‘두 고기’를 저런 식으로 대하는 것을 인간다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은 것 하나부터 더 윤리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식용 고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의심하고 변화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자연과 생명에 야기하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한 고민과 시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를 통해 ‘윤리적인 고기’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육한 고기’의 값이 비싸진다면, 맛이 없어진다면 이는 적절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장,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기 때문에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십 톤의 음식 쓰레기가 불균형하게 쏟아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이 없다면, 우리는 종(種, species)을 가르는 돌담 앞에서 미심쩍은 눈으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계속 바라보며 ‘이것이 인간인가’ 질문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극단적인 불의를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사_ 김민식 MBC PD,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저자

세상에는 위를 보는 사람이 있고, 아래를 보는 사람이 있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들을 선망하여 무엇이든 밟고 올라가려는 이가 있고,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이 어쩌면 많은 이들의 노동과 희생 위에 이뤄진 것이 아닐까 끝없이 고민하는 이가 있다. 5년 전, MBC 노조 집행부로서 170일간 파업을 했을 때 나를 징계하고 괴롭힌 것은 권력에 기생하는 기자나 검사 따위의 엘리트들이었다. 저것이 세속의 성공이라면, 과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때, 한승태 작가의 《인간의 조건》을 만났다.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라는 책을 통해 겸손을 배웠고 어떤 상황에서도 징징거리지 않고 버티는 법을 배웠다.

오랜 시간 한승태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려왔다. 척박한 노동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의 시선은 이제 더 낮은 곳으로 향한다. 고기로 태어나 인간을 먹여 살리는 동물의 곁으로. 자신을 낮추어 더욱 성장하는 작가에게 또 한 번 배운다.





책 속으로



이 책은 멸종 위기로부터 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찾아 떠난 여행을 기록한 글이다. 내가 처음 양계장에 발을 디딘 것이 4년 전이다. 당시에는 동물의 삶을(당연히 인간도 동물이지만 여기선 편의상 인간이 아닌 동물만을 동물이라고 부르겠다) 확인하겠다거나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서울을 떠날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다. 소개소장이 100원짜리 밀크 커피 한 잔을 뽑아주며 강원도의 옥수수 농장과 금산의 양계장을 추천해줬다. 내가 후자를 선택한 이유는 옥수수보다는 닭을 키우는 쪽이 조금이나마 덜 지루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맞았다. 양계장은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예상이 맞은 건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돈을 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내가 원한 것은 악몽에나 나올 법한 그 닭들에게서 멀어지는 것뿐이었다. 내가 축사 안에서 본 것들 가운데 모르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축사 속에 내가 예상한 대로의 모습을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이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보고 싶어졌다. 이들 주위에는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도 밭을 만들려고 숲에 불을 지르는 주민도 없었지만 디스커버리 채널의 주연 배우를 괴롭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하지만 비슷하게 강력한 위기가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_5쪽



동정심도 그저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닭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이것들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밟은 다음 저 산 너머로 차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 닭들에 대해서 책으로 읽었다면,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다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내 눈앞에 있었고 너무나도 역겨워 보였기 때문에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 케이지란 도구는 갇힌 쪽이나 가둔 쪽 모두에게서 최악의 자질을 이끌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_19쪽



계급이란 것은 옷차림이나 대학 졸업장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이빨로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있는 데 복 부장이 대뜸 내게 물었다. “야, 너 그거 니 이빨이야?” 적당하게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지금 그게 내 피부냐고 물은 것처럼. 그는 내 이빨을 임플란트나 틀니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내 이빨로 향했다. “히야, 승태 이빨 잘생겼네. 가지런하니. 얼굴보다 이빨이 낫다.” 이빨이 잘생긴 남자가 이상형인 여성이 몇이나 될까 추측하는 동안 아저씨들은 자신들의 치아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씹을 때 크든 작든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어금니에 문제가 있어서 아주 약하게 씹거나 앞니로 씹었다. 나와 비교적 같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마흔의 장 대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치과에서 일하는 친척을 둔 덕분에 어릴 때부터 싼 가격으로 꾸준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매번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치는 이유가 단순히 먹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저씨들은 이빨에 생긴 문제는 참을 수 있을 만한 불치병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좀처럼 병원에 가려고 하질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 밥을 먹을 때면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아저씨들이 음식을 씹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며, 들릴 듯 말 듯 신음 소리를 내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처럼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우적우적 씹어대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머쓱해졌다. _58쪽



무감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동에서부터 차례대로 작업했는데 얼마나 많은 닭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수백 마리는 될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손에 ‘투두둑’ 하고 닭의 명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전해져도 정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릴 때만큼의 감정도 소모하지 않고 닭의 목을 비틀었다. 내 발 주위는 무도병에 걸린 것처럼 사지를 흔들어대는 닭으로 가득했다. 잠깐, 정말 찰나의 100분의 1 정도의 순간 동안 예전의 일기에 적어놓은 그런 감정들, 미안함, 불편함, 찝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금세 짜증과 피로에 묻혔다. 이런 식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_154쪽



겉으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걱정이 됐다. 물론 상처는 크지 않았다. 주사 바늘이 이미 수십 마리의 돼지들 몸속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나는 더욱 초조했다. 결국 한 시간이 지나서야 처치를 했다. 사장은 돈사에 소독약이 없어서 사무실까지 내려가야 하는 걸 무척이나 귀찮아했다. “안 죽어, 안 죽어. 피 살짝 나는 것 가지고…… 이제 보니까 아주 귀여운 구석이 있어.” 주사 바늘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건 뉴욕이나 암스테르담으로 이민을 간 후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의료 폐기물 더미 속에서 주운 주사기로 이 국제관계학과 졸업생의 팔을 살짝 찔러보고 싶어졌다. 아, 그렇게만 할 수 있었다면 이 야심만만한 사업가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_171쪽



다시 한 번 눈물이 핑 돌았다. 돈도 돈이었고 분하고 억울한 것도 그렇지만 가장 나를 비참하게 만든 것은 그의 말투가 한두 시간 전에 멱살을 붙들고 호로새끼를 외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중했다는 거다. 조금이나마 화를 가라앉히고 진정해서일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대에서 소송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농장장은 그가 “문제 생기면 변호사 시동부터 걸고 보는 인간”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일도 소송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차하면 법정에서 증거물로 쓰일 수 있는 휴대폰 문자에 조금 전 일어났던 폭행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이렇게 철저하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나 쌍남 같은 사람은 절대 이런 사람을 이길 수 없겠구나. 이 개새끼! 이 씨발 놈! 가만 놔두면 안 되겠어. 신고해야겠어. 나는 결심했다. _233쪽



사장처럼 온화한 사람이 전기 충격기로 돼지를 찌르는 모습이 잘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씨 아저씨나 강 부장이 조금이라도 폭력적이거나 거친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전기 충격기는 돼지라는 상품을 다루는 방식의 하나일 뿐이었다. 여기에 이곳 돼지 삶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강경의 사장은 (이런 식으로 야비하게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는데)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에게는 사람보다 상품이 더 중요했다. 그는 우리가 절대 돼지를 때리지 못하게 했다. 상품에 흠집이 생기면 안 되니까. 그가 감시하는 동안뿐긴 했지만 어쨌거나 농장의 원칙은 그랬다. 하지만 횡성의 사장은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가 물건처럼 다루는 것은 돼지뿐이었다. 그는 진심에서 우리가 너무 힘들게 일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돼지를 때리는 것도 전기 충격기를 쓰는 것도 막지 않았다. 전자는 법적 책임을 피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두들겨 팰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돼지에게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게 했다. 후자는 뺨을 얻어맞으면 자기가 뭘 잘못했나부터 고민할 사람이었지만 돼지에게 전기 충격 주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이성의 노예들이 보는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성적으로 문란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횡성의 양돈장에서 보았던 일들도 같은 논리로 이해한다. 그건 그들이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동물은 물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어느 과학자의 말을 바꿔서 표현해보자면 생명관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은 동물을 아끼고 악한 사람은 동물을 학대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 그것은 대부분 동물은 물건이라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_263쪽



그런 일들이 괜찮은지 물어보자 상대는 내가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즉시 이해했다. “개 키우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그 대답은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흘러나왔기 때문에 더욱더 확신에 차 있는 듯이 들렸다. 내 자신이 쓸데없는 참견쟁이처럼 느껴졌다. 이곳의 물을 마시고 이곳의 쌀을 먹는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내가 뭐라고 그게 더럽고 끔찍하다고 난리란 말인가? 나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을 이론서 한 귀퉁이에서나 찾을 수 있을 법한 기준을 가지고 폄하하고 있는 걸까? ‘다 그런 거지’라는 말속엔 내 비난보다 훨씬 더 거대한 존재에게 호소하는 울림이 있었다. 나는 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_355쪽



갑이 을의 처지를 상상하는 것이 힘든 일이라면 인간이 동물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동물은 특히나 식용 가축은 인간 앞에선 영원불변의 을일 테니 말이다. 이곳은 케이지 하나에 여러 마리의 개를 넣고 기르다 보니 서로 싸우고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치료 같은 건 없었다. 어떤 개는 뒷다리에 30cm 정도 길이로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벌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방치됐다. 또 이곳엔 눈에 이상이 생긴 개가 많았다. 가장 심했던 개는 한쪽 눈알이 부어서 눈 대신 8번 당구공을 끼워 넣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어쩌다 저렇게 된 거냐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고 물으면 그는 한결같이 시큰둥했다. “별 거 아냐. 조금 따끔하다 말아.” 유달리 상상력이 부족한 남자가 대답했다. _414쪽

칠면조를 기르는 미국의 어느 동물 복지 농장은 일반적인 사육 기간보다 수개월을 더 기르는데 이 고기 역시 질기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고기를 구매하는 식당과 개인 소비자들을 위한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했다. 맛은 어찌 보면 생산비나 시설 문제보다 더 큰 어려움일 수도 있다. 동물 복지가 미각과 연결된다면 요식업계의 변화까지 동반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동물에게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그렇다 해도,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동물들이 갇혀 있는 시간의 감옥에 대해 고민해볼 가치는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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