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

  • 자 :정석희
  • 출판사 :황소자리
  • 출판년 :2017-08-11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7-09-22)
  • 대출 0/5 예약 0 누적대출 1 추천 0
  • 지원단말기 :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TTS)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 신고하기
  • 대출하기 미리보기 추천하기 찜하기

저녁 해가 더 빨리 떨어지는 것처럼 나의 남은 세월이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그러나 내 인생이 다 저물기 전에 손주들의 시작과 내 삶의 끄트머리가 겹쳐질 기회가 주어졌으니, 나에게는 다시 없을 축복이었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 과정에서 세대를 넘어선 소통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조부모의 손자 양육은 자식 세대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물리적 측면을 떠나 아기의 안정적인 인격 형성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50일 차로 세상에 나온 외손주들을 위해 난생 처음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물리고 자장가를 부르는 저자의 이야기는 육아기의 전범으로 읽혔다. 전공을 떠나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딸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고마웠고, 외손들과의 교류도 참으로 애틋했다.

자녀교육이라는 난제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이 땅의 무수한 부모와 그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이희란(부산가톨릭대학교 언어시청각치료학과 교수) |



생의 황혼녘, 서툴게 시작된 한 남자의 ‘진한’ 육아기!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아이 키우기는 어느 시대 누구에게든 최고의 난제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적이 있었나 싶다. 한쪽에서는 세계 최저 출산율을 근거로 요즘 젊은이들이 통 고생을 감수하지 않는다며 닦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손주병病”이니 “황혼육아”니 하며, 부모 세대에게 아이 맡기고 출근하는 딸들을 은근히 질책한다. 육아를 개인의 문제로 방치하는 사회 속에서 직장 가진 엄마들이 마지막으로 기대고 의탁할 언덕조차 ‘불효’라는 딱지를 붙여대니, 이 시대 엄마들은 참으로 고단하고 막막하다.



그런데 여기, 딸들의 짐을 기꺼이 나누어지겠다며 남들이 팔 걷어붙이고 말리는 길을 택한 남자가 있다. 풍족하게 지원해주지는 못했지만 자식 4남매는 줄줄이 명문대를 졸업해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 사회복지학자, 법조인, 신문기자가 되었다. 팍팍하고 어렵던 시절 이 악물고 키워낸 자식들이 순탄하게 제 갈 길 가고 있으니 이제 한숨 돌리며 편안한 노년을 즐겨도 되련만, 그와 아내는 기꺼이 외손자를 키우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한꺼번에 둘씩이나!



노년의 봄

2006년 11월, 그리고 이듬해 1월에 50일 간격으로 손자 둘이 태어났다. 첫째 손주이자 둘째 딸의 아들인 도헌과 뒤이어 태어난 큰딸의 아들 경모를 저자와 그의 아내는 쌍둥이처럼 함께 맡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기로 한 건 순전히 딸들에 대한 AS 차원이었다. 아이들을 맡아서 돌보게 될 아내가 결정한 일이기도 했지만, 내심 딸들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던 지난 시절을 보상해주고 싶은 부정이 간절했다. 물려줄 대단한 재력도 권력도 없는 아비로서, 반듯하게 자라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직장생활에 매여 사느라 자식들은 대부분 아내 혼자 키웠고, 그에겐 손자를 돌보는 일이 첫 번째 육아나 다름없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지만 품에 안은 두 아이는 난생 처음 맛보는 환희와 보람을 선물해주었다. 누군가에게 절실한 존재가 되었다는 뿌듯함, 그리고 하루하루 몰라보게 달라지는 갓난쟁이들을 살피는 일은 미처 예상치 못한 경이와 기쁨이었다. 이들을 맡겨둔 딸과 사위들이 모여들어 집안엔 오랜만에 사람 냄새가 났다. 그에게 아이들과 함께 지낸 3년은 노년에 찾아온, 파릇한 봄이었다.



이 책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는 두 손자들을 돌보며 노년의 즐거움과 가족의 의미를 새록새록 발견해가는 할아버지의 기록이다. 책 속에는 저자가 두 아이들과 티 없이 교감하고, 순수한 헌신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이 정성스런 육아앨범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담겨 있다. 저자는 손자들과 부대끼는 유쾌한 에피소드와 더불어 육아가 힘들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현실적 장애들, 그리고 인생 후반기를 사는 남자로서의 소회 등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들려준다.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

처음엔 그에게도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외손자를 봐주느니 파밭을 맨다.’거나 ‘외손자를 귀애하느니 방아깨비를 귀애하지.’ 류의 오래된 속담이 환청처럼 들려왔고, 아기를 맡기로 했다는 말에 짜기라도 한 듯 입을 모아 혀를 차는 지인들도 적잖이 신경 쓰였다. ‘나도 결국 늙어서 애나 보게 되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했고, 마치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육아의 힘겨움 앞에서 신경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적도 있었다.

도헌과 경모와 함께 지내게 된 이후, 그의 삶은 철저히 아이들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집안의 모든 가구에 안전장치를 달고, 문턱 없애는 공사를 하고, 육아용품들이 줄줄이 자리를 잡았다. 거실 한 가운데 놓인 칠판에는 아기들이 우유를 얼마나 먹었는지, 응가와 쉬야는 언제 했는지 등 일과가 빼곡하게 기록됐다. 아기들이 아플 때면 체온계 숫자 하나에도 마음을 졸였고, 피부에 빨긋빨긋한 발진이 돋아나자 아토피에 좋다는 뱀딸기를 찾아 유모차를 몰고 주변 야산을 이 잡듯 뒤졌다.

하지만 밤낮없이 기저귀 갈고 우유 먹이고, 유모차 한 대씩 번갈아 밀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그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 건 피로나 권태가 아니었다. 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처럼 먹먹한 기쁨에 순간순간 목이 메었고, 정신은 나날이 충일해졌다. 외출하려는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서럽게 울던 녀석은 조금 더 자라자 “누가 제일 좋아?”라는 빤한 질문에 “하버지.”를 외치며 눈을 맞춰주었다. 등에 업혀 동네 놀이터를 순회하던 녀석은 어느새 삐뚤빼뚤 쓴 축하카드와 함께 “우이 하버지, 생이 추카함미다.” 노래를 불러주었다. 손주들 앞에서 평소의 근엄은 사르륵 녹아내렸다. 평생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던 그였지만 유모차만 앞세우면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논리적이고 사려 깊은 경모와 관찰력이 뛰어나고 몸이 재빠른 도헌이 점점 개성을 빛내며 자라는 모습은 마음이 터질 듯 자랑스러웠다.



가족과 삶을 돌아보다

아이들이 가져다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젊을 땐 직장에 매여, 나이 들어선 가부장적 타성에 젖어 무심히 지나쳤던 아내와 딸들의 삶이 그에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보조역할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에 부치건만, 아이들과 온 집안 살림을 돌보는 아내는 얼마나 아프고 힘겨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변변한 세간도 없는 낡은 집에서 혼자 4남매를 키워낸 아내의 노고가 새삼스러웠다. 아들에 비해 딸들에게 제대로 마음 써주지 못했던 지난 시절도 자꾸만 마음에 밟혔다. 일과 가정을 다 지키기 위해 남자들보다 몇 배나 더 힘겹게 분투하는 딸들을 보고 있자니, 그간 무심하게 생각하던 남성 중심 조직문화의 명암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껏 가슴으로 껴안지 못했던 아내와 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육아를 ‘아이 가진 엄마’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현실 속에서 젊은 부모들이 감당해야 할 무게에 가슴 아파하고, 품속의 아이들이 뛰놀게 될 미래를 그려보는 사이 그의 노년은 너그럽고 풍요롭게 성숙해졌다.



이 시대, 할아버지의 진짜 목소리

아이들은 이제 다섯 살이 되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한 아이들은,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 날아간 방아깨비처럼 그의 품을 떠났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헛헛함과 그리움, 그리고 고즈넉한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아이들과 ‘매일매일 함께 하던 일상’은 ‘종종 만나는’ 즐거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와 아내는 여전히 아이들을 위한 비상대기조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해 놓아두는 우산처럼, 부부는 언제든 딸과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여기저기서 ‘황혼육아’의 어두운 그림자를 들춰내는 지금, 그는 말한다. 나이 들어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일은 아주 힘들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라고. 가만히 있어도 세월은 가는 법이라면, 커가는 아이들과 함께 진한 행복과 감동을 느끼며 늙어가는 일이야말로 노년을 풍요롭게 보낼 썩 괜찮은 방법이 아니겠느냐고.

이 책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는 명쾌한 자녀교육서나 육아지침서를 넘어, 인생의 황혼기를 정직하게 살고 있는 한 어른의 사려 깊고 묵직한 에세이로 읽힌다. 저자는 정갈한 필체로 일과 육아라는 미로에서 고통받는 젊은 부모들을 위로하고, 밋밋한 시간 속에 놓인 동년배 노인들에게 ‘멋지게 나이 드는’ 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다정하게 권유한다. 훈풍처럼 불어오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세대를 넘어 새롭게 소통하고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것이다.
지원단말기

PC : Window 7 OS 이상

스마트기기 : IOS 8.0 이상, Android 4.1 이상
  (play store 또는 app store를 통해 이용 가능)

전용단말기 : B-815, B-612만 지원 됩니다.
★찜 하기를 선택하면 ‘찜 한 도서’ 목록만 추려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