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을 왜 보지 못했을까
인생 포물선의 끝자락이 노을 속으로 저만큼 보이는 지점에서 오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모처럼 지나온 길을 한 번 돌아본다.
얼룩으로 물든 흔적 사이로 홀연히 고은 선생의 시 〈그 꽃〉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 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왜 보지 못했을까. 올라올 때는 보이지 않던 꽃들이 돌아서서 내려다보니 거기에 너무 많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다른 길을 에돌아 온 것도 아닌데, 그런데 왜 그때는 그 꽃들이, 그렇게 는실난실 손짓을 하고 피어있는데도 내게는 보이지 않았을까.
마음 같아서는, 아니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되돌아가 새로 한 번 올라왔으면 싶다. 올라올 때 그 꽃들을 보았더라면 분명히 내 생각도 달랐을 것이고, 따라서 다른 길을 택했을지도 모를 테고, 지금쯤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모습으로 여기에 올라와 있을 터인데···.
아마 시인도 나와 같은 안타까움 때문에 〈그 꽃〉을 노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서서히 멀어져가는 기억 속을 붙잡고 싶은 저자의 애잔함이 돋보이는 수필집이다. 이미 두 편의 수필집, 몇 편의 장편소설과 비평집으로 호평을 받아온 저자 특유의 잔잔함과 꿀벅지 예찬(?), 반려견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 명품에 대한 소회, 자식 주례 서기, 추억의 하모니카 등에서 느낄 수 있듯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노년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이제 고령화 시대로 접어든 대한민국, 과연 우리 아버지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