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대의 외과의사 백광현뎐 2

조선 최대의 외과의사 백광현뎐 2

  • 자 :송기숙
  • 출판사 :시대의창
  • 출판년 :2015-04-01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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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했던 조선 외과학의 거장, 백광현의 진짜 이야기





우리는 한의학에 대해 어느 만큼 알고 있을까? 우리 몸의 체질을 돌보고 기운을 보하는 데는 한의학이 좋지만 외과적인 처치가 필요한 경우에는 한의학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람들도 때로는 다리가 부러지고 폐에 고름이 차기도 했을 것이다. 그럴 때 한의사들은 그냥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얼마 전 TV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닥터 진〉에는 한의학에 외과적 처치술이 없다는 오해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닥터 진〉에 등장하는 한의들은 전염병이 돌면 부적이나 나눠주고 도무지 치료라는 걸 하지 않는다. 물론 약을 주로 쓰는 약의보다 메스와 같은 큰 침(피침, ?針)으로 절개술을 시행하는 침의는 더 고된 직종이었기에 침의가 되기를 기피하는 의원도 많았다고 한다. 현대에 양의학을 수련하는 의사들이 외과를 기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명맥이 끊어져, 이제는 한의사들 중에서도 조선의 외과학에 대해 아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지만, 16세기 조선에는, 일본의 의학사가인 미키 사카에(三木榮, 1903~1992)가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 파레(Ambroise Par?)와 견준 인물이 있었다. 명종 때(1545~1567) 활동한 의사 임언국(任彦國)이다. 임언국은 동시대 중국에서도 시행된 적이 없었던 독창적인 침법을 구사했다. 피침으로 환부를 가로 세로 길게, 종기의 뿌리까지 깊숙이 째서 썩은 피를 뽑아내는 십(十) 자형 절개법이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흐른 뒤, 백광현(白光玹, 1625~1697)이 나타난다.

현직 한의사이기도 한 작가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원에서 의사학(醫史學)을 전공하면서 백광현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는 그저 수많은 선조 한의사 중 한 명 정도로 생각했다.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백광현이 단순한 옛 의사가 아니라 조선을 대표할 만한 명의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학위 논문을 마친 뒤, 강의 준비를 위해 한의학의 외과학 방면에서 이름을 남긴 여러 인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다시 백광현을 만났다.



문집에 전해 내려오는 그의 행적은 다소 특이했다.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왕실의 호위병이 되었고 이후 말을 치료하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사람을 치료하는 뛰어난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백광현의 행적을 전하는 문집과 실록에 공통되게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당대 사람들이 그를 ‘신의(神醫)’라고 불렀다는 사실이다.

백광현에 관한 내용이 기록된 문집을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실록에서도 백광현과 관련된 내용을 빠짐없이 찾아보았다. 그의 행적에 다가갈수록 그가 얼마나 깊고 큰 존재였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어찌 이토록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단 말인가? 나는 점점 백광현의 일생에 빠져들었다.

(중략)

백광현의 행적을 단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구할 수 있는 사료란 사료는 다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백광현의 삶을 가장 자세히 기록해놓은 조선 시대의 고서를 만나게 되었다. 단 한 군데 도서관에서 겨우 찾아낸 그 책에는 살아생전 백광현의 활약에 관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원래 무관이었으나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후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고, 이후 명성이 높아져 마침내 내의원까지 입성하게 된 그의 극적인 인생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또한 왕실에 병이 생길 때마다 치유해낸 백광현의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정이 잊히지 않고 후세에 전해지길 바라는 지은이의 절절한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1권 4~5쪽



백광현의 삶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고서는 저자 미상인 《지사공유사 부경험방(知事公遺事 附經驗方)》이다. 이 책의 원본은 일본 다케다(武田) 과학진흥재단의 쿄우쇼쿠(杏雨書屋)에서 소장하고 있고, 국내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사본 한 부가 있을 뿐이다. 또 조선의 선비들이 남긴 문집 《완암집(浣巖集)》《희조질사(熙朝?事)》《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귀록집(歸鹿集)》에도 백광현에 관한 내용이 있다. 백광현이 어떤 병을 앓은 왕실 인물이나 고위 관료를 어떻게 치료했는지는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에 꽤 자세히 나온다. 그리고 《임천백씨족보(林川白氏族譜)》와, 일본의 의학사가 미키 사카에의 저서 《조선의학사 급질병사(朝鮮醫學史 及疾病史)》에서도 백광현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록을 모으면서 따로따로 흩어져 있던 ‘백광현의 삶’이라는 커다란 퍼즐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나갔다. 마침내 퍼즐이 완성되자 가슴이 터질 듯한 기분을 이길 수 없었다.

말하고 싶었다. 그가 조선 땅에서 어떻게 살다 갔는지를! 무관의 집에서 태어나 무술로 입신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중인의 직업인 의원의 길을, 그것도 의원들이 가장 기피한다는 외과의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마침내는 종1품 숭록대부에까지 오른 그의 삶을 토해내고 싶었다.

(중략)

글의 장르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백광현의 일생을 알게 된 후 느낀 이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그가 살았던 인생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구성하면서도 독자에게 가장 편하게 읽힐 수 있는 ‘역사소설’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가슴 속에 있던 것을 써 내려갔다. 마치 불에 달궈진 뜨거운 구슬을 삼키고서 이를 견디지 못해 토해내듯이 내 가슴속에 있는 무언가 뜨거운 것을 마구 뱉어내었다. 그의 삶을 내 부족한 언어로 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마치 고문과도 같았다. 육신은 온전했지만 정신은 매일같이 형틀 아래에서 신음했다. 마치 주리에 뼈가 뒤틀리고 장형에 피가 터지고 인두에 살점이 뜯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글을 썼다. 어느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기에, 이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새벽녘까지 글을 썼다. 몸은 21세기 한국에 있었지만 내 마음은 17세기 조선 땅을 오가고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에서



백광현의 삶을 재구성하려면 백광현만 알아서는 안 되었다. 그는 현종 4년(1663년), 서른아홉 살에 내의원에 들어가 피바람이 몰아치던 숙종 때에 주로 활동했다. 그는 인현 왕후도 치료하고 희빈 장씨도 치료했다. 서인 책략가였던 김석주도 치료하고 주요 남인이었던 우의정 민희도 치료했다. 백광현, 그는 실제로 살아서 감정을 가지고 움직이던 ‘사람’이었기에, 권력 암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심을 지키고자 인간적으로 고민하고 의원으로서도 고뇌를 겪었을 것이 틀림없다. ‘사람’ 백광현을 되살리려면 그를 느끼고 사랑해야 했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글 잘 쓰는 한의사 방성혜가 역사의 갈피에서 잊혔던 백광현이라는 인물을 찾아 헤맨 모험의 기록이요, 그를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불러내기 위해 혼신을 다해 외친 초혼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에 등장하는 혈자리를 표시한 그림과 본문에 쓰인 한의학 용어 해설을 부록으로 싣고, 본문 중에는 의궤와 화상첩, 등장인물의 초상화 등 조선시대 기록화와 자료 사진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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