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간신 춤춘다

난세에 간신 춤춘다

  • 자 :최용범, 함규진
  • 출판사 :페이퍼로드
  • 출판년 :2013-04-11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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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간신을 연구해야하는가?

간신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조명한 한국사 속 간신 19人




옛 선비들의 말로는 어진 임금과 훌륭한 신하가 만날 때 태평성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만남, 용렬한 임금과 간사한 신하의 만남은 크나큰 불행을 가져온다. 따라서 충신을 세우고 간신을 내치는 일이 정치요, 요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간신은 겉보기로는 온화하고 청렴하며,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워 보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일단 임금의 총애를 얻은 그들은 차차 사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임금과 충신들을 해치고, 끝내는 국가와 민족마저 위험에 빠트린다.

이는 오늘날에도 명심해야 할 교훈을 준다. 지금은 임금도 신하도 없지만, 여전히 사람이 중요하고,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정치사를 돌이켜보자. 아니 자신이 속한 조직을 생각해 보자.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윗사람에게 아부하여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경우, 양가죽을 쓴 늑대가 진짜 인재를 모함하여 내쫓는 경우, 개혁을 빙자하여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다가 정치도 경제도 망쳐버린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과연 누가 간신인지, 그런 간신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를 숙지할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이 책은 한국사 속에 간신이라 칭해진 인물들을 다음 네 가지로 분류해 정리했다.





좁은 의미에서의 간신, ‘왕의 남자’가 된 간신들



임금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얻은 후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인 임금에게 이러한 신하는 어쩌면 당연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도 유독 간신이라고 낙인찍힌 이들이 있다. 그들은 총애를 받고 권력을 휘두른 것에 그치지 않고 나라의 안위까지 불안하게 만들어버렸기에 간신이라 칭해진다. 이런 부류의 간신으로 저자는 도림, 묘청, 김돈중, 김용, 홍국영 등을 꼽았다.

이 중 고구려 승려인 도림은 ‘간신술책’으로 백제의 개로왕에게 신임을 얻은 뒤 무리한 토목공사를 남발하게 해 백제의 쇠락을 가져왔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충신이지만, 그의 수법은 간신의 해악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자주당의 대표적 인물로 부각시킨 묘청이 간신으로 꼽힌 것에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묘청은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무리한 서경천도와 금국 정벌을 주장해 고려의 체제 정비를 지체시킨 인물이었다. 묘청은 왕의 총애를 얻은 뒤 서경천도를 강행하다 실패에 직면했다. 무리한 공사로 백성들의 원성이 커진데다 화재로 신축한 서경의 대화궁이 불타기까지 했던 것.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묘청은 기름이 들어간 떡을 대동강에 던져 수면에 기름이 흘러 오색으로 빛나게 했다. 그리고는 왕에게 강물이 오색으로 빛나는 것은 용이 침을 토했기 때문이며 이는 상서로운 징조이므로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허황된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런 꼼수는 금방 들통났다. 궁지에 몰린 끝에 일으킨 것이 ‘칭제건원’과 ‘금국정벌’을 내세운 묘청의 난. 준비되지 않은 반란은 일시에 실패로 돌아갔다. 역사의 해프닝이었던 것.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모든 수를 쓴 묘청은 ‘왕의 남자’형 간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무신의 난을 가져온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 공민왕을 끝까지 현혹한 김용, 정조의 즉위를 위해 목숨을 다해 충성했지만, 비대해진 권력 탓에 정조의 측근에서 축출된 홍국영 등은 권력에 지나치게 밀착된 측근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왕의 남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 왕권까지 넘본 세력가



흔히 간신이라고 하면 손바닥 비비기에 능숙한 아첨꾼 2인자를 생각한다. 하지만 아첨꾼은 ‘간신’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부류 중 하나에 속할 뿐이다. 역사에 나타나는 간신들 중에는 아첨꾼의 수준을 넘어서 왕권까지 유명무실하게 만든 ‘대단한’ 간신들도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윤원형. 조선 전기의 정치가였던 윤원형은 왕실의 외척으로 처음 권력에 발을 들여놓는다. 누이인 문정왕후를 배후에 두고 반대파와 치열하게 권력다툼을 벌이던 윤원형은 언론3사를 포섭하고 궁녀를 매수하며 점차 세를 확장시켰다. 그러다 문정왕후 소생의 명종이 왕위를 잇자 최고의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 그는 권력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단행했다. 자신의 심복을 시켜 정적들을 살해한 후 자신의 심복과 형, 그리고 자신의 아들까지 제거한다. 결국 조정에는 ‘윤원형의 개들’만이 발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외척이자 우의정으로 완벽한 권력을 손에 쥔 윤원형은 대놓고 뇌물을 받기 시작했다. 관리의 임용이 모두 윤원형에게 달려있으니 당연히 전국에서 뇌물이 쇄도하였다. 윤원형은 수군의 군선을 ‘뇌물배’로 만들고 이를 군졸이 호위하게 하는가하면 국가에 납품하는 물건도 멋대로 빼돌려 팔아먹었다. 10채가 넘는 저택에서 금은으로 만든 밥그릇으로 매끼 1만전씩 들어가는 식사를 했다는 사료를 보면 윤원형의 사치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부패와 패륜이 얼마나 도를 지나쳤던지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들조차 ‘개만도 못하다’, ‘벌레나 다름없다’고 막말을 할 정도였다. 그래도 임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못 본 체 해야 했다. 윤원형의 세가 왕권으로 누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날고 긴다는 윤원형의 세력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문정왕후가 죽자 윤원형의 권력은 급격하게 무너졌고, 결국 그는 고향으로 떠나 비참한 생을 자살로 마무리하게 된다.

저자는 다른 간신들을 다시 뜯어보면 긍정적 일면이 보이지만 윤원형만은 현대적 관점으로 보아도, 또 인간적 관점으로 보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악행만 저지른 괴물같은 간신이라 말한다. 똑같이 왕권을 넘봤던 한명회는 그래도 실력이 출중했고 실질적 공로도 많았지만 윤원형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 빼고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오로지 사익만을 생각한 윤원형. 그는 악랄한 간신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이 밖에도 누대에 걸쳐 왕실과 외척관계를 맺은 뒤 왕의 후견인으로 기능하다 어느새 왕권을 능멸했던 인물들로 이자겸, 한명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진정한 간신인가, 역사의 희생자인가 - 간신의 누명을 쓴 사람들



『난세에 간신 춤춘다 - 한국사 간신열전』의 성과 중 하나는 간신을 기존의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현대의 시각으로 재조명해 인물들의 객관적인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온 역사 상식 중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저자에 따르면 남곤의 ‘주초위왕’사건은 날조된 것이고, 한명회는 살생부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유자광이 남이의 시를 고쳐 모함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구체적인 사건들의 진위를 파헤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사건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각 인물들의 실제 상황과 모습까지 판단한다. 그리고 역사에는 간신으로 남았지만, 간신으로만 불리기엔 아까운 사람들을 대변해 그들의 속사정을 공개한다.

임사홍은 연산군에게 어미의 피 묻은 금삼을 건네 조선에 피바람을 부추긴 악랄한 간신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진실일까? 저자는 그가 간신으로 남은 이유를 집권 초기부터 따지고 들어간다. 소신이 뚜렷하고 바른말 잘 한다는 평가를 받던 임사홍은 가볍게 던진 말 한마디로 귀양까지 가게 된다. 흙비가 내리니 금주를 하자는 요청이 있다고 왕이 말하자 “약간의 흙비가 곧 천변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다였다. 그러나 신료들은 하늘의 꾸지람을 모르고 임금에게 사치향락을 권하는 임사홍을 처벌하라고 난리였다. 그 과정에서 임금이 임사홍의 악행을 묻자 아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고 한다. 악행의 근거가 될 만한 일을 벌이지도 않은 임사홍은, 그러나 조정 대신들의 강력한 성토로 인해 간신으로 몰려 귀양을 가게 된다. 그렇게 이유도 확실치 않은 억울한 귀양살이를 22년간이나 계속한 임사홍은 연산군 대에 이르러 연산군과 친한 아들의 힘을 빌어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피 묻은 금삼’ 사건, 즉 갑자사화가 벌어진다.

역사는 임사홍이 아무것도 모르던 연산군에게 비밀을 누설하며 선동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에 의문을 던진다. 실제로 연산군은 즉위 초부터 폐비의 일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연산군은 생모 윤씨가 충분히 죽을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믿고 있었다. 그 때 임사홍은 그 점에서 발상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임사홍은 죄도 없는데 억울하게 공격받아 죄인이 된 자신의 일화를 폐비 윤씨에게 빗대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 상황을 못마땅해 하던 연산군이 임사홍의 이야기를 명분삼아 갑자사화를 일으켰으리라 보고 있다고 한다. 임사홍이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연산군을 부추겼다고 보기에는 희생자의 부류가 일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임사홍을 두둔해온 편이었던 어세겸이나 홍귀달 등도 갑자사화의 희생자가 된 것을 보면 이것이 임사홍의 복수를 위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임사홍이 최고 권력을 누리며 연산군의 악행을 부추겼다는 이야기도 낭설이라고 한다. 임사홍은 끝까지 권력의 주변부에서 맴돌았을 뿐이며 자신의 아들을 연산군에게 잃기까지 했다. 그런 임사홍이 최고 권력을 누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는 단지 사회가 뒤집어쓰고 있던 위선의 껍질을 벗기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선함을 지향하는 척 하면서 그 뒤로는 악에 봉사하는 제도. 자신을 22년이나 썩게 만든 위선적이며 모순투성이인 제도. 임사홍은 사회 제도 자체에 염증을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버렸다. 임사홍은 연산군 시대의 모든 악행의 주모자로 전락했다. 그는 명신이 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간신으로 기록되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얼마나 합리적인지, 얼마나 도덕적인지를 묻는 저자의 말은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이밖에도 역사의 승자가 간신으로 전락시킨 인물로 신돈, 남곤, 원균, 이이첨 등이 거론되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방향을 바꾼 철새파 - ‘대세’를 따른 소인배들



대부분의 정치가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이는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어서, 선비들은 신념에 따라 파를 나누고 신념을 관철하려다 죽음을 맞기도 했다. 물론 국제 정세 등의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사상을 바꾸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상과 함께 자신의 신념과 인간성, 그리고 가까운 사람까지 하루아침에 져버리며 부화뇌동 하는 모습은 결코 미화될 수 없다. 역사는 일정한 노선을 견지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하며 나라의 미래보다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했던 인물을 간신이라고 불렀다.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간신은 아마도 이완용일 것이다. 이름 앞에 호(號)처럼 붙는 ‘매국노’라는 단어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라를 팔아먹은 일제 앞잡이 이완용. 그는 철새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완용을 친일파로만 기억하지만 그는 친일파이기 이전에 친청파, 친미파, 친러파로 여러 번 자신의 노선을 바꿨다. 이렇게 많은 변신을 한 그가 친일파의 대명사로 기억되게 된 것은 을사조약 이후였다. 을사조약 당시 매국에 앞장선다는 비난이 두려워 눈치만 보던 외부대신 박제순을 대신하여 이완용이 ‘조약을 수용하되 내정간섭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총대를 맨 것이다. 고종은 이렇게 비겁하게 남들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밝히는 이완용을 신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 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완용이 냉정하고 똑똑하며 대세에 순응하는 인물임을 간파했다. 이후 이완용은 독립을 바라는 고종과 식민지화를 바라는 일본 사이의 불화를 무마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황은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정리되었다. 이완용은 대세에 철저히 순응하는 인간이었고, 당시 일본이 대세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완용이 매국뿐만이 아니라 왕을 암살하기까지 했을 수 있다는 추측을 제기한다. 고종이 암살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설은 아직 확정적인 역사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완용이 고종을 암살했다는 설과 그렇지 않다는 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당시 이완용은 독립운동을 바라는 고종과 자신을 신임하는 총독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독립운동을 도모하는 고종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완용이 일본이라는 대세를 따르기 위해 결국 고종 암살에 한몫했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은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섬기던 임금까지 져버린 것이다. 일제는 이 매국노를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둘도 없는 악당으로 떠오른 이완용이라는 카드를 쓰면, 유력자와 결탁하여 일제를 치려는 민심을 분열시켜 민중 세력의 확장을 막을 수 있었다. 일제는 이완용을 여러모로 철저히 이용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완용의 모습은 모범생 그 자체였다. 그는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고 주색에 빠지지도 않았다. 이완용이 시대를 잘 만났으면 이른바 처세의 능신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맞서 싸워야할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영혼을 놓아버렸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역사적으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고 오로지 물결 따라 부유하기만 하는 삶을 살았다.

역사의 대의에 관계치 않고 오로지 사욕을 위해 대세에 추종했던 인물로 송유인, 유자광, 김자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변신에 능했다는 것,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디 이런 인물이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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