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나무 식기장

장미나무 식기장

  • 자 :이현수
  • 출판사 :문학동네
  • 출판년 :2011-08-24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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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가 치듯 찰나에 스러지고 마는 생의 한순간을 기억하는 장미나무 식기장처럼



단단하고 웅숭깊은 문장, 뛰어난 직관과 안목으로 포착한 삶의 편린들을 빛나는 결정체로 빚어내는 작가 이현수의 두번째 소설집 『장미나무 식기장』이 출간되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지 18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도 12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 두 권의 장편소설을 포함, 네번째 책이면 결코 빠르다고는 할 수 없는 걸음걸이다.

어쩌면 이현수의 문장들은―그리고 작품들은―그 더디지만 힘있는 걸음걸음이 보여주는 것처럼, 오랜 세월을 같이해 한 가족의 소소하지만 빛나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낡은 가구를 닮아 있다. 보는 이를 한눈에 유혹하는 화려한 꾸밈도, 요모조모 쓸모 있는 최신식 기능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나 집안의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사를 갈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꼭꼭 챙겨가야 하는, 끝내 처분해야 할 때는 차마 버리지 못해 불태워버려야 하는……



식기장을 열 때마다 텁텁하고 쌉싸래한 감나무숲의 냄새가 난다. 이 식기장이 있는 한, 불에 타 없어진 책상과 함께 우리가 거쳐온 여러 집들과 그 집에 얽힌 역사와 소소한 일들을 나는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번개가 치듯 찰나에 스러지고 마는 생의 한순간을 오롯이 기억하자면 그들도 대책없이 큰 책상이나 수퉁스런 장미나무 식기장 하나쯤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떠나온 집이 나를 짓고, 장마재 출신의 책상이 아버지를 짓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지은 그 집들이 전부 불에 타기 전에. _「장미나무 식기장」 중에서



단단하게 오래 벼리고 다듬어져 군더더기가 없는 그의 문장은 그래서 더욱 힘을 발한다.



오늘 산 여자는 닭살 피부였다. 옷을 벗겨보니 생각보다 훨씬 오돌토돌했다. 드물게도 운이 좋은 날이었다. (……) 그는 자신이 만진 것들은 무엇 하나 잊지 않고 낱낱이 기억한다. 그의 손등과 손바닥은 아득한 시간의 저편, 음습하고 소소한 기억의 작은 편린조차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_「녹」 중에서



감자탕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 혼자 끓였다. 살점을 발라낸 돼지등뼈를 뭉툭한 식칼로 내리칠 때, 허공에 떠 있던 어머니의 눈동자도 그때만은 제자리에 박혀 푸르스름한 빛을 냈다. (……) 고백건대 추풍령 엄마가 감자탕 끓이는 걸 몰래 숨어서 훔쳐본 적도 있었다. 어머니가 별안간 저고리 섶을 헤치고 뭉툭한 식칼로 자신의 가슴 한쪽을 쓰윽 도려내는 것은 아닐까, 핏물이 뚝뚝 듣는 가슴살을 감자탕 속에 집어넣고 같이 끓이는 건 아닐까, 아니면 마지막 남은 해가 하혈을 하듯 서산이 온통 핏빛으로 낭자하게 물들 때쯤 갑자기 어머니가 가랑이를 벌리고 솥 안에 아기를 낳는 건 아닐까, (……) _「추풍령」 중에서



이런 문장들 앞에서, 우리는 그저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장식된 것도, 또한 정색을 하고 도려낸 경제적인 문장들도 아닌, 그저 읽는 순간에 마음에 들어와 박히는 그 문장들로, 그의 소설은 독자들의 마음속 한켠에 단단하고 오래된, 쉽게 버릴 수 없는 낡은 가구가 되어 들어앉고야 만다.



‘모성’과는 다른 이름의 어머니들



이번 작품집에서 작가는 호주제, 부동산 투기, 기러기 아빠, 종갓집 종부, 이웃과의 소통 부재 등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인물들의 삶 속에 담아낸다. 그러면서도 인물들 개개인의 삶 자체를 들여다보는 데 소홀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빛을 발하는 존재들은 주변의 다른 인물들을 압도하는 ‘어머니’들이다.



이번 작품집에는 ‘모성’이라는 단어에서 풍겨나오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있는 어머니들이 등장한다. 이 어머니들은 딸을 집안 식구들 속에 버려둔 채 추풍령고개를 넘어 석 달이고 반년이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유령처럼 떠돌며 탈이 난 사람과 음식을 바로잡고 큰일을 앞둔 집에서는 화려한 솜씨를 펼치며(「추풍령」), 서방 잡아먹었다는 사람들의 말에 아랑곳없이 손해와 이익의 오차가 집 한 채 값인 장사를 동물적 감각으로 운영하며 사람들을 부리는 헌헌 여장부로 살고(「장미나무 식기장」), 고향과 가정을 등지고 미제 물건 장수나 어음할인 등 안 해본 일 없이 살다 나중에는 치고 빠지는 데 선수인 주식의 귀재 ‘개봉동 빠가사리’로 이름을 날리고(「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 미국에서 아이 둘을 건사하며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 혼자 있는 남편이 어설프게 바람 한번 피운 후에 가정부터 깨자고 나올까봐 걱정한다(「태중의 기억」).

하지만 이들은 남편이 만든 애물단지 책상에 그토록 눈을 흘기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다 그것이 불에 타는 것을 보며 목놓아 울고(「장미나무 식기장」), 평소에는 아무런 왕래가 없다가도 딸애가 입원을 하면 병원에 나타나 딸을 키워준 계모에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 미국에 들렀다 혼자 다시 한국으로 떠나는 남편 앞에서 섧게 우는(「태중의 기억」)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렇게 작가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모범답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한 식구는 물론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어떤 것 앞에서는 더없이 약한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이들을 통해, 작가는 ‘어머니’에게서 ‘모성’의 굴레를 벗겨내고 그들 각자에게 영혼의 자존을 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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